최용현(수필가)
이탈리아의 저명한 영화감독 살바토레(아명은 토토, 자크 페랭 扮)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알프레도(필립 느와레 扮)의 사망 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한다. 그리고 영화에 푹 빠져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조그만 읍에서 살고 있는 꼬마 토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성당으로 달려간다. 성당의 신부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미리 검열하여 남녀 간의 키스 장면은 무조건 잘라낸다. 토토는 늘 신부의 검열을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그렇게 한 것은 일이 끝나면 신부와 함께 ‘시네마 파라디소’라는 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토는 늘 영사실을 들락거리며 영화를 보았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토토의 어머니는 생활고로 인해 토토를 제대로 뒷바라지해주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아버지처럼 토토를 보살펴 주었고, 토토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 영사실에서 보냈다.
알프레도는 어린 토토가 영사실에 드나드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의 눈에는 멋있게 보일지 몰라도, 영사기술은 장래의 비전이 없는 데다 휴일도 없이 매일 영사실에 혼자 갇혀서 지내야 하는 일이어서 행여 토토가 이 일을 물려받겠다고 할까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영사실에 불이 나고, 불을 끄던 알프레도가 화염 속에 쓰러진다. 관객들은 모두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마침 영화관으로 오고 있던 토토가 달려와 천신만고 끝에 알프레도를 구해낸다. 그 화재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 알프레도는 이제 토토가 정식 영사기사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청년이 된 토토는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학생 엘레나가 전학해오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데, 처음에는 냉담하던 엘레나도 결국 토토의 진심이 담긴 구애를 받아주었다. 두 사람은 아름답게 사랑을 가꾸어갔지만, 엘레나의 부모는 빈털터리 토토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엘레나 때문에 토토가 이 좁은 시골에 눌러앉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알프레도는 ‘푸른 눈을 가진 여자는 다루기 힘들다’, ‘불은 항상 재로 변한다. 아름다운 사랑도 마찬가지.’라며 토토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도록 계속 조언을 해준다.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된 엘레나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한 쪽지를 토토에게 남기지만, 끝내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토토는 알프레도의 권유대로 이곳을 떠나 로마로 가기로 결심한다. 엘레나의 연락처조차 모른 채. 알프레도는 떠나는 토토에게 ‘네 인생은 저 편에 있고, 여기엔 환상만 있다. 이젠 환상을 버려라.’며 이렇게 말한다.
“이 읍에는 너에게 도움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마을 사람들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꿈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알프레도 덕분임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읍내에서 우연히 엘레나와 닮은 소녀를 발견한 토토는, 엘레나의 딸임을 직감하고 몰래 따라가는데, 거기서 중년이 된 엘레나와 30년 만에 재회한다. 두 사람은, 토토의 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알프레도가 쪽지를 전해주지 않아서 그날 만나지 못했던 사실을 알아내고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못 다한 사랑을 나누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토토는 ‘시네마 파라디소’가 도시계획에 따라 폭파되어 철거되는 것을 지켜본다.
로마로 돌아온 토토는 알프레도가 자신에게 남긴 유품을 열어본다. 어린 시절 영사실 창 너머로 훔쳐보던, 신부에 의해 가위로 잘려져 상영되지 못한 키스 장면들을 모아놓은 필름통이었다. 토토는 그 필름을 혼자 감상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88년작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한 영화감독의 성장담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합작품이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칸영화제와 유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시네마 천국’은 가난 속에서 꿈을 키워온 어린 소년 토토와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영사기사 알프레도 사이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중년의 사내와 한 꼬마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 영화의 포스터, 그리고 경쾌한 선율 ‘토토와 알프레도(Toto & Alfredo)’에도 잘 드러나 있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꿈을 심어주고, 연애와 진로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는 멘토였던 것이다. 알프레도 역을 맡은 프랑스 배우 필립 느와레와 중년의 토토 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자크 페랭은 이 영화를 계기로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한다.
이 영화에는 1960년대 우리나라 소도시의 허름한 극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고 미소 지을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자전거를 타고 동시 상영하는 다른 극장으로 필름을 급히 가져가는 장면, 야한 장면이 나오면 휘파람을 불어대는 장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이 스크린 자막보다 한 템포 먼저 대사를 읊어대는 장면 등.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의 테마(Love Theme)’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엔리오 모리꼬네의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가 작곡을 했는데,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곡답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을 들으면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짠~ 해지지 않는가.
그런데 ‘시네마 천국’에는 중년이 된 엘레나와 토토의 재회장면이 삭제되어 있고, 그 재회장면이 들어있는 칸영화제 상영판은 ‘신시네마 천국’으로 이름이 바뀌어서 개봉되었다. 중년의 엘레나는 영화 ‘금지된 장난’(1952년)에서 폴레트 역을 맡았던 바로 그 다섯 살짜리 꼬마 브리지트 포세이다. 자세히 보면 그 이마와 눈매, 입매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영화는 볼 때마다 그랬듯이, 다시 봐도 여전히 감회가 새롭다. 특히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겨준 키스 장면과 어우러져 흘러나오는 주제곡은 진하고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마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시골동네에 오랜 만에 찾아왔을 때의 느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