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창’(1954년)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년), ‘현기증’(1958년), ‘진로를 북북서로 돌려라’(1959년), ‘싸이코’(1960년), ‘찢어진 커튼’(1966년) …. 또 그를 소개하는 글에는 항상 ‘서스펜스 장르의 개척자’, ‘미식가 수준의 화면 디자이너’ 등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새(The Birds)’는 인간이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동물이 갑자기 돌변하여 인간을 공격해오는, 인간의 오만을 비웃는 서스펜스 스릴러이다. 중학교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새에게 눈알을 파 먹힌 사람의 시체를 보고 얼마나 무서웠던지….
샌프란시스코의 한 새 가게에 눈부신 금발미녀 멜라니(티피 헤드렌 扮)가 들어온다.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우자, 그녀는 곧이어 들어온 젊은 신사 미치(로드 테일러 扮)에게 주인행세를 하며 무슨 새를 찾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카나리아를 잉꼬라고 잘못 말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남녀는 생뚱맞게 티격태격하다가 헤어진다.
활달한 성격의 멜라니는 차 번호 조회를 통해 미치의 주소를 알아내어 차를 몰고 찾아간다. 그리고, 미치를 놀라게 하려고 보트를 빌려 타고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잉꼬 한 쌍이 담긴 새장을 갖다놓는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달려든 갈매기에게 머리를 물어 뜯겨 미치의 간호를 받게 된다.
멜라니는 그 동네에 사는, 미치를 짝사랑한 적이 있는 여교사 애니의 집에 묵는데, 미치의 초대를 받아 어머니(제시카 탠디 扮)와 어린 여동생 캐리가 함께 사는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다음날, 미치의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간 멜라니는 까마귀처럼 생긴 시커먼 새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신속히 귀가시키지만, 새들은 뛰어가는 아이들의 머리에, 목에 달라붙어 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한다.
멜라니는 어느 식당에서 신문사 사장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 학교에서 일어난 새들의 습격사건에 대해서 알려준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각자 마음대로 해석한다. 주정뱅이는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떠들어대고, 조류학자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며 새는 절대로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열을 올린다. 또 멜라니의 말을 과장해서 받아들여 벌벌 떠는 아이 엄마도 있다.
그때 담뱃불 때문에 바로 옆 주유소가 화염에 휩싸이자, 치솟는 불길을 따라 새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방 하늘이 새떼로 뒤덮인다. 이들은 자살특공대마냥 유리창을 박살내고 돌진하여 사람의 얼굴을 물어뜯어 피투성이로 만든다. 캐리는 무사했으나 학생들을 대피시키던 여교사 애니는 시체로 발견된다.
새떼들의 공격으로 도시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자, 그때서야 라디오에서 긴급뉴스로 보도되기 시작한다. 좀 전에 멜라니의 말을 듣고 벌벌 떨던 아이 엄마는 ‘네가 온 뒤로 마을이 이렇게 변했어. 넌 마녀야!’ 하며 모든 재앙을 멜라니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
미치는 창문을 모두 틀어막고 못질을 하여 새떼의 공격에 대비한다. 한밤중에 새떼들이 맹렬히 공격해 오지만 가족들이 모여 있는 1층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미치가 잠든 사이 다락방으로 올라간 멜라니는 새떼의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다. 아침에, 멜라니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집을 나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1963년에 나온 영화 ‘새(The Birds)’는 빈틈없는 스토리와 뛰어난 화면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 덕분에 스릴러물을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새떼가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히치콕의 천재성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정말 60년대 영화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새가 상징하는 것은, 조용히 지나가면 새떼들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라스트 신에서의 암시에서 나타나듯이, 타인을 장악하려는 자의식 혹은 근원적 욕망(libido)이라고 해석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인간의 변화이다. 처음에는 새들의 공격으로 이들 구성원들이 모두 극심한 공포에 빠지지만, 그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층 성숙해진다. 마지막에 집을 떠날 때 캐리가 잉꼬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자, 미치와 그의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묵시적 동의를 하는 장면에서는 다시 새와 화해하고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멜라니는 병원으로 떠나는 차 안에서 미치의 어머니에게 기댄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모성애를 느낀 것이다. 또, 남편의 사망 이후 홀로 남겨질 두려움 때문에 아들의 여자친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미치의 어머니도 멜라니를 간호하며 보살펴준다. 남에게 의지만 하던 어머니가 이제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인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The End’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새들의 공격이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示唆)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래 히치콕 감독이 생각한 마지막 장면은 온통 새들로 뒤덮인 금문교의 모습이었으나 제작비가 부족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여주인공 티피 헤드렌이 초점 없는 눈으로 두 팔을 허공으로 내저으며 새에 대한 공포를 연기한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워킹 걸’(1988년), ‘퍼시픽 하이츠’(1990년)의 여주인공 멜라니 그리피스가 그녀의 딸이다. 지적인 이미지의 어머니에 비해 딸은 상당히 육감적이다.
‘새’가 리메이크 된다고 한다. 감독은 마이클 베이, 여주인공은 ‘킹콩’(2005년)에 나오는 나오미 왓츠.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 작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좀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21세기의 신기술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새’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