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의 유형 ‘똑부똑게 멍부멍게’
최용현(수필가)
‘호랑이가 이끄는 양의 군대는 양이 이끄는 호랑이의 군대를 이긴다.’
이 말은 지휘관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군사격언이다. 지휘관이라 함은 원래 중대(中隊)급 이상의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를 뜻하는 군사용어이지만, 여러 사람을 지휘하거나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확대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말이다. 여기에는 회사의 경영자나 각급 관리자는 물론, 한 나라의 최고책임자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지휘관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덕장(德將), 지장(智將), 용장(勇將) 혹은 맹장(猛將)으로 분류된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이 기준에 따라 분류해 보면 유비나 손권은 덕장, 조조나 제갈량은 지장, 여포나 장비는 용장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분류방식은 그 사람의 개성을 특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그 기준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몽고메리 원수, 제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신출귀몰하며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독일 롬멜 장군의 전차병단을 물리친 영국군의 최고 지휘관이다. 그는 한 독일장군의 이론을 인용하여 아주 간단명료한 기준으로 지휘관을 분류하였다.
그의 이론은 모든 지휘관은 ‘똑똑함과 멍청함’ ‘부지런함과 게으름’ 중에서 각각 한 가지씩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도출해 낼 수 있는 지휘관의 유형은 네 가지인데, 각 유형별로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한 사람씩 찾아보자.
ⅰ)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휘관(똑부) : 총명하고 근면하니 지휘관보다는 고급 참모에 적합하다. 제갈량이 표본적인 예이다. 판세를 분석하는 명석한 두뇌에다 투철한 충성심, 그리고 성실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지휘관으로 부족할 데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지휘관은 스스로도 피곤하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피곤하게 한다.
ⅱ) 똑똑하고 게으른 지휘관(똑게) : 두뇌회전이 빠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기 때문에 고급 지휘관에 적합하다. 조조 같은 인물이다. 세(勢)를 정확히 읽는 안목과 여유 그리고 결단력, 최고 지휘관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때로는 전격적으로 행동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보고는 무시할 줄도 안다.
ⅲ) 멍청하고 부지런한 지휘관(멍부) : 늘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만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여 실익(實益)이 없다. 유비를 꼽고 싶다. 부하들을 이끌고 온 중원을 헤매고 다녔지만 헛발질의 연속이다. 제갈량의 도움으로 촉을 세우는데, 관우의 죽음에 흥분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오를 정벌하려다 실패하고 죽는다.
ⅳ) 멍청하고 게으른 지휘관(멍게) : 좋은 계책을 내주어도 그 진가를 모르고 채택할 줄도 모르니 한심할 뿐이다. 하진 같은 인물이다. 하 황후를 누이로 둔 덕분에 대장군이 되었는데, 그의 명령 한 마디로 쉽게 처단할 수 있는 십상시를 토벌하기 위해 멀리 있는 군웅들을 불러들여 환란을 자초하고 자신도 죽고 만다.
몽고메리 이론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고급 지휘관으로 적합한 인물은 제갈량 같은 똑부가 아니고 조조 같은 똑게라는 것이다. 둘째, 하진 같은 멍게가 유비 같은 멍부보다 지휘관으로서는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몽고메리 이론의 진가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고사 하나를 소개해본다. 포악한 독재자 동탁이 자신의 애첩을 몰래 희롱하던 부하장수 여포를 죽이려 했을 때 이를 말리고자 동탁의 참모인 이유(李儒)가 들려준 춘추시대의 고사이다.
초나라 장왕(莊王)이 공을 세운 무장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있던 어느 날 밤, 갑작스런 돌풍으로 연회장의 등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이때, 자리를 돌며 여러 장수들에게 술을 따르던 장왕의 애첩 허희에게 한 장수가 무엄하게도 허리를 껴안고 뽀뽀를 했다. 애첩은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 장수의 갓끈을 뽑아 쥐고 장왕 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일러 바쳤다.
“전하, 이 중에 어둠을 미끼로 제게 못된 짓을 한 장수가 있습니다. 빨리 불을 켜고 그 장수를 찾아 처벌하십시오. 갓끈이 없는 장수가 범인입니다.”
왕의 애첩을 성희롱하다니, 그 장수는 꼼짝없이 잡혀서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었다. 시신(侍臣)이 막 등불을 켜려고 하자, 장왕은 ‘잠깐!’ 하면서 ‘아직 불을 켜지 마라. 이곳은 제장들을 격려하는 자리이니 제장들의 즐거움은 곧 나의 즐거움이다. 제장들은 지금 즉시 갓끈을 뽑아버려라.’ 하고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애첩의 기지(機智)도 헛되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최고 지휘관으로서 이만한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지휘관을 만나면 죽을 사람도 산다.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치여서 자라지 못하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 있으면 같이 큰다.
그 후 장왕이 어느 전투에서 포위되어 옥쇄(玉碎)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장수가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들어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적진을 헤치며 장왕을 구해주고 쓰러졌다. 장왕이 다가가서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찌하여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를 구해 주었느냐?’ 하고 물었다.
독자들은 아마 이 장수가 누구인지 짐작하리라.
‘저는 그때 연회자리에서 전하의 애첩에게 불측한 짓을 했던 바로 그 치한입니다. 그때 죽을 목숨이 대은을 갚고 이제야 죽습니다.’ 하면서 숨졌다고 한다.
‘갓끈을 끊은 회합’이라는 뜻의 ‘절영회(絶纓會)’라고 전하는 고사이다.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 부하를 가진 지휘관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초장왕은 제환공과 진문공에 이어 세 번째 춘추5패가 되지 않는가.
당시의 실권자인 동탁에게도 이런 지혜를 들려주는 참모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동탁은 애첩의 농간에 놀아나 결국 그의 오른팔인 여포에게 참살당하고 만다.
지휘관에게 있어서 총명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상황판단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본인 스스로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하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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