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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훈훈한 삽화 ‘조조와 관우’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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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훈훈한 삽화 조조와 관우

 

최용현(수필가)

 

   풍운아 조조와 삼국지 최고의 무장 관우, 두 사람은 동탁을 무찌르기 위해 전국의 17제후들이 모여 결성한 연합군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조조는 맹주(盟主) 원소와 함께 연합군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었고, 관우는 의형제인 유비와 함께 제후의 한사람인 북평태수 공손찬의 막하에서 마궁수(馬弓手)로 있었다.

   동탁의 선봉대장 화웅이 연합군의 선봉인 손견군을 크게 제압하고 다시 싸움을 걸어왔다. 연합군 진영의 장수들이 차례로 나가 맞섰으나 화웅에게 참패하여 연합군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때 관우가 출전을 자원했다. 병졸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꾸짖는 제후들도 있었지만 조조는 출전시켜 보자고 했다. 조조는 관우를 내보내면서 따뜻하게 데운 술 한 잔을 권했다.

   “술은 그대로 두십시오. 얼른 갔다 와서 마시겠습니다.”

   관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청룡언월도를 들고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려갔다. 한바탕 소란스런 접전이 벌어지고 나서 관우가 돌아왔다.

   “, 여기 화웅의 목이 있소이다.”

   적장 화웅의 목을 땅에다 던지며 관우는 아까 조조가 따라준 술을 마셨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조조의 관우에 대한 연정(?)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세월이 흘러 조조는 황제를 모시고 각지의 제후들을 호령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관우는 유비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조조가 여포를 평정하고 허도로 개선했을 때, 관우도 유비와 함께 조조를 따라 허도로 갔다.

   조정의 실권자인 조조가 황제를 모신 사냥터에서 황제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자, 의분을 참지 못한 관우가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조조를 베려고 했다. 이를 눈치 챈 유비가 재빠르게 눈짓으로 제지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 후, 조조를 제거하는 모의에 가담한 유비는, 가까스로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서주에서 군마를 단련하고 있었다. 유비의 가담 사실을 뒤늦게 안 조조는 격노하며 군사를 일으켜 서주로 쳐들어왔다. 유비는 패퇴하여 가족도 버려둔 채 기주의 원소에게로 도망가고, 관우는 어느 조그만 토산에서 조조군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말았다.

   관우의 충의와 뛰어난 무용을 잘 아는 조조는 장료를 보내 항복을 권했다. 관우는 장렬하게 옥쇄하려 했지만, 함께 죽기로 한 도원결의와 유비의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고 세 가지의 항복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조조가 아닌 한의 천자에게 항복하는 것임을 인정할 것

   둘째, 유비의 가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문전 출입을 삼가할 것

   셋째,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떠남을 양해할 것

   조조는 세 번째 조건이 좀 꺼림칙했지만, 정성을 다하면 관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세 조건을 모두 수락했다. 조조는 친히 진문 앞까지 나와 관우를 맞으며 극진히 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흘마다 잔치를 열어주고 비단옷에다 미인들을 뽑아주기도 하고, 또 황제에게 인사도 시키고 벼슬까지 내려주었다. 나중에는 여포가 타던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까지 관우에게 주었다. 실로 끝없는 짝사랑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자 원소진영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목 베어 조조의 은혜에 보답한 후 조조의 곁을 떠난다. 보장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한 뼘 땅도 없는 떠돌이 객장인 유비 곁으로 가는 것이다. 저 유명한 오관돌파의 신화를 남기고.

   다시 두 사람이 대면하는 것은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겨우 수십 기를 이끌고 도망치고 있을 때였다. 이 때 관우는 조조가 패주하는 화용도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으니 이제 조조는 꼼짝없이 사로잡힐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조조가 가련한 몰골로 인정에 호소하자, 관우는 전에 입었던 은혜를 생각하여 차마 잡지 못하고 그냥 보내준다. 무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책이었지만, 인정과 의리의 사나이 관우였기에.

   그 후 관우가 오나라의 명장 여몽의 침공을 받아 죽자, 촉의 보복을 두려워한 오주 손권은 화()를 떠넘기기 위해 관우의 수급(首級)을 위의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관우의 수급이 든 나무상자를 받자마자 뚜껑을 열어보았다. 잠든 듯 안온한 관우의 얼굴. 문득 조조는 옛 생각이 나서 관우에게 말을 걸었다.

   “관공, 그간 별 일 없으셨소?”

   그 순간, 관우가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눈을 번쩍 뜨고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목 아래까지 드리워져있던 수염까지 곤두서서 금방 조조에게로 뛰어오를 듯 했다. 조조는 너무 놀라서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린 조조는 침향목(沈香木)을 깎아 관우의 몸통을 만들어 수급에다 붙이게 했다. 그리고 관우에게 형왕(荊王)의 시호를 내리고 왕후의 예로 낙양 남문 밖에 장사를 지내게 했다. 조조는 몸소 영구에 절하며 장례 일을 돌보았다.

   그 후 조조는 관우의 환영이 자꾸만 나타나고 평소의 지병인 두통까지 겹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관우가 죽은 지 석 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정다감했던 삼국지 최고의 영웅 조조도 죽음 앞에서는 여느 필부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귀신얘기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조조가 말을 걸자, 죽은 관우의 수급이 눈을 번쩍 뜨고,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고, 더욱이 수염까지 곤두섰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얘기이다. 아마도 관우의 빛나는 충혼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가 아닌가 싶다.

   두 사람에 대한 사후 평가를 보면, 조조는 처음에 간웅으로 자리매김 되었다가 차차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불세출의 영웅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관우는 죽어서 문신 공자와 나란히 무신으로 추앙받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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