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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를 섬긴 두 모사 ‘전풍과 저수’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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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를 섬긴 두 모사(謀士) ‘전풍과 저수

 

최용현(수필가)

 

   난세에 뜻을 세우고 지모를 펼치려는 모사(謀士)는 자신이 섬길 주군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의 생사를 포함한 운명이 주군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섬기는 주군에 따라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삼국지 전반부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원소를 섬기다가 아깝게 사라지는 비운의 모사 전풍과 저수의 돋보이는 지략과 충절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전풍(田豊), 군리(郡吏)를 하다가 조정의 시어사(侍御使)가 되었으나 환관들이 발호하자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혔다. 그러나 원소의 간곡한 청을 받고 황실을 받든다는 대의명분에 끌려 그를 섬기게 되었다. 일찍이 원소에게 천자를 모실 것을 권하는 등 대국을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저수(沮授),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뜻이 컸다. 기주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중,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사람이 되었다. 원소 진영의 모사 중에서 전풍과 함께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공손찬을 멸하고 사기충천해 있던 원소가 조조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을 때, 전풍과 저수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출진을 말렸다. 그 후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유비를 치러갔을 때, 전풍은 원소에게 즉시 출병할 것을 권했다.

   “지금 조조가 유비를 치러 서주로 떠나고 허도는 비어있습니다. 이 틈에 군사를 이끌고 허도로 쳐들어간다면 위로는 천자를 받들고 아래로는 만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원소로서는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운 호기였다. 그러나 원소는 막내아들이 병을 앓고 있다며 만사가 귀찮다고 할 뿐이었다. ‘자식의 병 때문에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다니.’ 전풍은 땅을 치며 탄식했다. 결국, 조조는 관우를 포로로 잡았고, 유비는 도망쳐서 원소에게로 의지해왔다.

   그 후 마음을 가다듬은 원소가 다시 조조를 치려고 했다. 그러나 전풍은 조조가 유비를 격파하고 한창 사기가 높으니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내실을 다진 다음, 다시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습니다.’하며 말렸으나 원소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 출진을 서둘렀다.

   전풍이 다시 한 번 간곡히 출진을 말리자, 원소는 전풍을 옥에 가두어버렸다. 전풍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 저수는 자신에게 닥쳐올 불길한 장래를 예감하고, 일가친척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조리 나누어주고 출정군에 합류했다.

   저수는 원소군의 맹장 안량이 직정적(直情的)인 점을 헤아리고 너무 앞서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고, 또 다른 맹장 문추에게는 돌아오는 길이 끊길 수 있으니 황하를 건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간했으나, 원소는 귀담아 듣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결국 조조진영에 있던 관우에게 두 장수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원소가 다시 70만 대군을 일으키자, 전풍은 옥중에서 지금 싸우면 반드시 패한다.’며 출진을 만류하는 글을 올렸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원소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저수는 상대의 약점을 간파, 전면전 대신 지구전을 권했다.

   “적군은 급히 싸우는 것이 유리하고, 군량과 마초가 넉넉한 우리는 천천히 지구전을 펴는 것이 유리합니다. 오래 싸움을 끌면 적군은 군량 때문에 저절로 퇴각할 것입니다.”

   옳은 지적이었으나 수적(數的) 우세를 믿고 전면전을 치르려는 원소의 귀에는 잔소리로 들렸다. 원소는 그의 입을 막으려고 저수마저 옥에 가두었다.

   어느 날 저녁, 저수는 옥중에서 천문(天文)을 살펴보고 급히 원소에게 전갈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원소를 만난 그는 군량창고가 위험하다며, 속히 그곳 경비를 강화하라고 진언했다. 그러나 원소는,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하려고 나를 보자고 했느냐!’며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날 밤, 70만 대군을 먹여야 할 오소의 군량창고가 조조군의 기습으로 다 타버리는 바람에 원소군은 사기가 꺾여 무참하게 패했다. 급기야 본진마저 조조군에게 짓밟힌 원소는 허겁지겁 도망을 쳤다. 조조는 감옥에 갇혀있던 저수를 풀어주며 함께 일하자고 권했다.

   “나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어서 나를 죽여라!"

   저수의 뛰어난 재주를 아는 조조는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으나, 저수는 끝내 의로운 죽음을 택했다. 조조는 그를 후하게 장사지내고 그의 충의를 기려 충렬저군지묘(忠烈沮君之墓)’라는 묘비까지 세워주었다. 원소의 협량(狹量)에 비하면 한껏 돋보이는 조조의 그릇.

   패잔병을 이끌고 기주로 돌아가던 원소는 그제야 전풍과 저수의 충언이 옳았음을 깨닫고 크게 뉘우쳤다. 이를 눈치 챈 모사 봉기는, 원소가 앞으로는 전풍을 중히 대우할 것이라 생각하고 주공께서 패하셨다는 말을 듣고, 전풍은 옥중에서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큰소리로 웃더랍니다.’하고 모함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원소, 그 말의 진위를 가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불같이 노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보검을 풀어주며 먼저 가서 전풍을 죽이라고 명했다.

   이때 전풍은, 옥리(獄吏)로부터 패전소식과 함께 앞으로는 원소가 그를 중용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아닐세. 그가 싸움에 이겼다면 나를 살려줄 것이나, 싸움에 졌으니 나를 죽일 것이네.’ 하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사자(使者)가 들이닥쳤다. 전풍은 원소가 내린 칼로 자결하기에 앞서, 슬피 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슬퍼할 것 없다. 장부(丈夫)가 세상에 나와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결국, 조조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원소는 유능하고 충직한 모사들의 충간을 듣지 않고 좌충우돌하다가 참패를 거듭한 끝에 피를 토하며 죽고 만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하북의 땅은 모조리 조조에게 평정되고 말았다.

   하늘이 준 큰 재주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의롭게 죽은 전풍과 저수, 주군을 잘못 선택한 줄 알면서도 끝까지 충절을 다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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