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블랙 스완(Black Swan, 2010년)’은 뉴욕 컴퍼니발레단이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공연의 주인공을 맡은 발레리나 니나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심리 스릴러 영화이다.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은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미국 배우조합(SAG), 크리틱스 초이스의 여우주연상을 받아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으며, 영국 아카데미를 포함하면 영미권 5대 메이저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했다. 밀라 쿠니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받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까지 합치면 이 영화로 총 97개의 상을 받았다. 1,3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3억 3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대박을 터뜨렸고, 우리나라에서는 총관객 163만 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발레라는 예술을 고도의 육체적 노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발레는 고도의 집중력과 상당한 체력이 필요한 예술인데, 우아함에 가려져 이 점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블랙 스완’에서 묘사되는 발레는 우아하다기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들어 보이며, 어떤 장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 扮)는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 연기로는 단연 최고로 꼽히는 발레리나이다.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발레단의 단장 토마스(뱅상 카셀 扮)는 현재의 프리마 발레리나 베스(위노나 라이더 扮)를 은퇴시키고, 니나를 백조와 흑조라는 1인 2역의 주인공으로 발탁한다. 충격을 받은 베스는 차에 치여 입원하고….
니나는 완벽한 백조 연기와는 달리 사악하고 도발적인 쌍둥이 흑조 연기는 좀 불안하다. 발레단에 새로 들어온 릴리(밀라 쿠니스 扮)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으로 은근히 흑조 캐릭터에 어울린다. 니나는 릴리를 경쟁자로 의식하여 환각과 망상에 빠지기 시작한다.
니나는 전직 발레리나였던 어머니(바바라 허쉬 扮)의 과보호와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릴리와 함께 밤거리로 나가 술과 마약을 경험하면서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한다. 마약에 취한 니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릴리와 아파트로 돌아와 레즈비언처럼 하룻밤을 즐긴다. 그러나 이 경험도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어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난 니나는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춤을 추는 릴리를 보고 자신의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릴리는 만일을 위한 보험인 셈인데, 니나는 진짜 흑조처럼 몸에서 검은 깃털이 돋아나는 환상을 경험하는 등 릴리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공연 당일 아침, 니나는 아픈 몸을 먼저 추스르라며 못 가게 하는 어머니와 몸싸움 끝에 극장에 도착하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무대에 오른다. 1막은 무난하게 넘어가지만, 2막이 끝날 무렵, 댄스 리프트 중 균형을 잃은 니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토마스 단장을 격분시킨다.
니나는 분장실에서 릴리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릴리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벽 유리가 깨지자, 커다란 유리 조각을 주워서 릴리의 배를 찌른다. 다시 무대에 오른 니나는 무대 위에서 관능적인 매력과 광기를 폭발시키며 완벽한 흑조 춤을 춘다.
니나는 마지막 장면인 백조의 죽음을 연기할 때 배에서 피가 나서 하얀 의상에 피가 스며 나오는 데도,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숨겨진 매트리스 위로 멋지게 점프하면서 공연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니나는 자신이 찔러 죽였다고 생각했던 릴리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데, 실제로 찔린 것은 릴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배에 유리 조각이 꽂혀있었다.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는 동안, 토마스 단장과 릴리, 다른 무용수들이 니나를 격려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모인다. 토마스는 니나가 배에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데, 니나는 침착하게 ‘느꼈어요. 완벽함을 느꼈어요. 완벽했어요.’ 하고 대답한다. 니나가 숨을 거두고, 그 순간 화면이 하얗게 바래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레옹’(1994년)으로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은 발레리나 ‘니나’가 되기까지 혹독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다행히 어릴 적 발레를 배운 경험이 있었고, 영화 출연이 결정된 후에는 매일 레슨을 받으며 연습했다. 무려 9kg를 감량했는데, 영화 촬영이 끝난 뒤 그녀는 ‘나보고 1주일만 더 아몬드만 먹으라고 했다면 아마 미쳐버렸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어려운 발레 동작의 대역을 맡았던 세라 레인이 자신의 대역 연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논란이 있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오스카 수상을 의식한 것인지, 영화 개봉 전후에 세라 레인의 인터뷰를 금지 시키는 등 대역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녀는 끝 자막에 대역이 아닌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은퇴한 프리마 발레리나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는 아역배우 출신으로 ‘비틀 쥬스’(1988년) ‘가위손’(1990년), ‘작은 아씨들’(1994년)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2001년 절도사건에 휘말려 이 영화에서처럼 퇴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2016~2026년)에서 주연을 맡아 대박을 터뜨리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의 안무가였던 뉴욕 발레단의 프랑스인 수석 무용수 벵자맹 밀피에와 약혼하여 2011년에 득남했다. 2012년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뿐 아니라 배필까지 얻은 셈이다. 그러나 2023년, 남편의 불륜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혼 11년 만에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