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영화는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扮)의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간의 행적(行蹟)을 현재 시점인 1999년 봄, 3일전, 1994년 여름, 1987년 봄, 1984년 가을, 1980년 5월, 1979년 가을의 7개 단락(段落)으로 나누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이 맨 먼저 나오고, 시작 부분은 맨 끝에 나온다.
- 야유회(1999년 봄). 40살이 된 김영호가 20년 만에 모이는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장에 허름한 행색으로 나타난다. 그는 회원들 속에 들어가 춤을 추다가 마이크를 잡고 ‘나 어떡해’를 부르다가 물속으로 뛰어들더니 어느새 철교 위로 올라간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자, 영호는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외치며 열차에 부딪쳐 산화(散花)한다. 영화는 영호의 마지막 절규와 함께 뒤로 가는 기차를 따라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 사진기(3일전). 주식 실패와 사기로 전 재산을 잃고 이혼한 영호는 남은 돈으로 권총을 구입하여 자살을 시도했으나 총이 불발된다. 전 아내 홍자(김여진 扮)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영호는 느닷없이 찾아온 첫사랑 순임(문소리 扮)의 남편을 따라 병원 중환자실로 가는데, 거기서 의식이 없는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주면서 오열한다. 순임의 눈가에도 눈물이 흐른다. 영호는 순임이 전해주라는 것이라며 남편이 건네준 사진기를 4만원에 팔고 순임과의 추억이 담긴 필름을 빛에 노출시켜버리면서 또 오열한다.
- 삶은 아름답다(1994년 여름). 가구점 사장인 35살 영호는 심부름센터에 부탁해서 아내 홍자가 운전교습 강사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아내고 모텔에 찾아가 두 사람을 혼내고 가구점 직원 미스 리와 맞바람을 피운다. 영호는 과거 형사시절에 자신이 폭행하고 물고문까지 했던 남자와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그가 학생시절에 일기장에 썼던 글귀 ‘삶은 아름답다.’를 다시 뇌까리면서 ‘그렇죠?’ 하며 멋쩍게 웃는다.
- 고백(1987년 봄). 만삭아내 홍자가 오늘 출산하러 병원에 갈 예정인데도 베테랑 형사 영호는 아무 관심이 없다. 영호는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운동권 학생을 발견하고 잡아서 폭행과 물고문을 하여 수배자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영호는 수배자를 잡기 위해 동료형사들과 함께 순임이 산다는 군산에 내려가 차에서 잠복근무를 한다. 비오는 날, 영호는 군산항 인근의 한 허름한 카페에서 여종업원에게 첫사랑을 이야기하다가 순임을 생각하며 흐느낀다.
- 기도(1984년 가을). 신참 형사인 영호는 선배 형사들의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이 발현된 듯 점점 잔혹하게 변해간다. 순임이 찾아와 적금으로 어렵게 장만한 사진기를 선물하지만, 영호는 옆에 서있는 식당 종업원 홍자의 허벅지를 더듬으며 순임을 당황하게 하다가 역에서 배웅할 때 사진기를 순임에게 돌려준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홍자와 결혼한 영호는 집들이 때 홍자의 밥상 앞 기도가 길어지자 집을 뛰쳐나간다.
- 면회(1980년 5월). 군에 입대한 영호는 비상이 걸려 급히 완전군장을 꾸리다가 순임이 보내준 유리병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박하사탕을 밟고 뛰어나간다. 영호는 계엄군으로 출동하는 군용트럭에서 자신에게 면회 왔다가 헛걸음치고 돌아가는 순임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못한다. 5.18 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된 영호는 밤에 광주역에서 귀가하는 여고생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하면서 무심코 쏜 총에 그 여고생이 맞아 숨지자 대성통곡한다.
- 소풍(1979년 가을). 야학에 다니는 스무 살 김영호와 구로공단의 박하사탕 포장공장의 여공 윤순임은 ‘가리봉 봉우회’의 소풍 때 처음 만난다. 순임은 영호에게 수줍게 박하사탕을 건네고, 영호는 들꽃을 꺾어주며 나중에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둘은 눈부신 햇살 아래 철교 옆 유원지 길을 함께 걸으며 첫사랑을 시작한다. 20년 전의 일이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지만 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시 정리해보면, 첫사랑을 시작한 한 청년이 군에 입대하여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진압군으로 동원되었다가 실수로 한 여고생을 쏴 죽인다. 그는 제대 후 경찰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 때문에 1987년 민주항쟁 때 운동권 학생에게 폭력과 고문을 자행하는 악덕형사가 되고 자신을 좋아하는 식당여종업원과 결혼한다. 가구점을 운영하던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몰락하여 결국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20년을 관통하면서, 군사정권에 의한 국가 폭력과 이로 인해 개인의 삶이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함으로써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함께 탄생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Wave) 영화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영상은 사실주의를 추구한다. 영호와 미스 리의 카섹스 장면은 웬만한 포르노영화 뺨칠 정도이다. 또 영호가 사우나에서 이발을 할 때 뒤에 지나가는 남성의 음모 및 성기노출 장면, 모텔에서 바람을 피우던 아내 홍자가 갑자기 들이닥친 영호에게 얻어맞으면서 도망칠 때의 전신누드 장면도 예상을 초월한다.
‘박하사탕’(1999년)은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제4회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각본까지 직접 쓴 이창동 감독은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휩쓸었고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영화 데뷔작에서 열연을 펼친 설경구는 총 10회의 남우주연상 혹은 신인상을 수상했고, 김여진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주인공 김영호가 자살하면서 절규하듯 뱉어내는 ‘나 다시 돌아갈래!’는 이 영화를 상징하는 불후의 명대사이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문구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눈물을 그의 첫사랑에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