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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촉을 유비에게 넘기려한 문관 ‘장송’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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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촉을 유비에게 넘기려한 문관 장송

 

최용현(수필가)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익주, 즉 서촉은 난세에도 불구하고 거의 독립적인 상태에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황실의 종친인 유장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산세가 험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중원의 전란으로부터 비껴서 있었다.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조조가 한발 뒤로 물러나자, 서촉에도 서서히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형주를 차지한 유비가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촉과 인접한 한중의 군벌 장로가 쳐들어오려고 한다는 급보가 먼저 날아들었다. 겁 많은 유장은 중신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한 관리가 일어서서 말했다.

   “조금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제가 세 치 혀로 장로가 감히 우리 서촉을 넘보지 못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용모가 좀 괴이쩍은 장송이었다. 코는 납작했고 입은 잘 다물어지지 않아 늘 잇몸까지 밖으로 드러났으며, 어딘지 모르게 비뚤어진 듯한 얼굴에, 키는 볼품없이 작았고 목소리마저 녹슨 종처럼 댕댕거렸다. 그러나 그는 한번 읽은 서책은 단번에 외워버릴 정도로 비상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조조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허도로 가서 조조로 하여금 한중을 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장로가 어찌 우리 서촉으로 쳐들어 올 수가 있겠습니까?”

   유장은 크게 기뻐했고, 장송은 그날로 허도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그의 품속에는 조조에게 바칠 예물 외에도 서촉의 자세한 지리와 군세(軍勢)가 기록된 지도가 들어 있었다.

   장송은 유장이 난세를 헤쳐 나갈 인물이 못된다고 판단, 조조를 만나보고 맘에 들면 그 지도를 넘겨줄 작정이었다. 난세가 되면 지식인들이 제각기 살길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허도에 도착한 장송, 조조가 자신을 위압적으로 대하자 속이 상해 그도 뻣뻣하게 대꾸했다. 조조는 화가 나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양수의 주선으로 다시 조조를 만난 그는 조조가 썼다는 맹덕신서를 위작이라고 지적하며 조조의 아픈 곳을 건드리다가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했다. 결국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고 말았다.

   서촉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해보니, 큰소리를 쳐놓고 왔는데 그냥 빈손으로 가면 관리들의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그는 발길을 돌려 형주로 향했다. 형주에 와있다는 유비를 만나 그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고 뒷일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때 첩자를 통해 장송이 형주로 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유비는 친히 마중을 나가는 등 정성을 다해 그를 맞았다. 조조에게 죽을 뻔했다가 유비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보니 장송은 매우 흡족했다. 유비의 인물됨도 듣던 것 이상으로 커 보였다. 그는 마침내 유비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주인은 난세에 서촉을 지킬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유공께서 우리 서촉의 주인이 되신다면 능히 중원의 조조와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소생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안에서 돕겠으니 속히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이 지도를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품속에서 서촉 지도를 꺼내 유비에게 내밀었다. 서촉의 산과 강의 형세는 물론, 각 성읍의 도로와 군사 요충지, 병력과 장수 이름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유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서촉으로 돌아온 장송은 유장에게 출장 결과를 보고했다. 그는 조조를 한의 역적으로 몰아붙인 다음, 형주에 머무르고 있는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 장로의 침입을 막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서촉을 유비에게 뺏기고 만다.’며 일부 중신들이 반대를 했지만, 순진한 유장은 종친인 유비가 그럴 리가 없다.’며 기어코 사자를 유비에게 파견하여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유비가 출발하자 유장은 군마와 군량, 장비를 가득 싣고 몸소 유비군을 맞으러 나갔다. 드디어 만난 두 사람은 동상이몽의 우의를 나누었다.

   유비의 장수들은 간간이 유장을 죽일 흉계를 꾸몄으나, 유비는 인의를 내세우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중의 장로가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유비는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출진했다. 장로군과 싸우던 유비는 전선에서 유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장로의 침공을 저지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기 바라오. 그런데 군사와 양식이 모자라니 군사 4만 명과 군량 10만 섬을 속히 보내주시오.”

   유비의 요청대로 조치를 하려던 유장은 중신들이 또다시 반대를 하며 극구 말리는 바람에 마침내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 결국 유장은 늙은 잡병 4천 명과 곡식 1만 섬만 전선으로 보냈다. 유비가 발끈했다.

   “우리가 저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저들은 군사와 재물을 아끼는구나!”

   화가 난 유비는 바로 형주로 철군한다고 소문을 내고, 반대로 서촉의 수도인 성도로 향해 쳐들어갔다. 드디어 유비가 칼끝을 거꾸로 돌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장송은 유비가 형주로 돌아간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놀란 나머지 유비에게 보낼 밀서를 작성했다. 형주로 돌아가지 말고 성도를 쳐서 서촉을 뺏어라는 내용이었다.

   장송이 유비에게 보낼 사자에게 막 밀서를 주려고 하는데 때마침 친형 장숙이 찾아왔다. 장송은 급히 소매 속에 밀서를 숨겼다. 오랜만에 찾아온 형과 술판을 벌이던 장송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밀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장숙이 그 밀서를 주웠다.

   집에 돌아온 장숙은 왠지 동생의 거동이 수상하다고 생각하여 밀서를 읽어보다가 기겁을 했다. 그는 고민 끝에 유장을 찾아가 동생을 밀고했다. 물증까지 있었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장송은 곧바로 체포되어 반역죄로 처형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 결국 유비는 무력으로 유장을 몰아내고 그곳에 촉나라를 세운다.

   서촉의 문관 장송. 그는 난세를 기화로 주군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매국노인가, 아니면 대세의 흐름을 미리 간파하고 스스로 역사의 물줄기를 선도한 선각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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