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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명장 ‘주유’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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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명장 주유

 

최용현(수필가)

 

   조조에게 순욱과 곽가가 있었고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었듯이 손권에게는 주유가 있었다. 오나라 최고의 명장이요 명참모인 주유, 안휘성의 명문호족 출신으로 자는 공근(公瑾)이다. 강동의 소패왕 손책과 동갑내기 친구였다가 후일 동서가 되었다. 그의 아내 소교는 손책의 아내 대교와 함께 미인으로 유명한 이교(二喬) 자매 중 동생이다.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귀공자 같은 풍모를 지녀 주랑(周郞)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음악에 유난히 조예가 깊었다. 그는 행차 때마다 악단을 대동했기 때문에 오나라 병사들은 음악소리가 들리면 주유가 온 것을 알았다.

   또 아무리 술에 취해도 연주가 틀리면 꼭 알아채고 악사 쪽을 돌아보았다. 그 때문에 악사들 사이에 정신 바짝 차려라. 주랑이 돌아본다.’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주유가 손책과 함께 오나라 창업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을 때, 불행히도 손책이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손책은 임종에 이르러 아우 손권에게 대권을 물려주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나라 안의 일은 장소에게 묻고, 나라 밖의 일은 주유에게 묻도록 하라.”

   주유는 새 주인 손권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했고, 손권은 그런 주유를 사부의 예로 대했다.

   강북을 평정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양자강까지 밀고 들어 왔을 때 오의 국론은 결전이냐 항복이냐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손권은 주유에게 의견을 물었고, 주유는 조조군의 약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항전을 주장했다.

   “조조가 강북을 평정했다고 하나 아직도 변경이 불안한 상태이므로 오래 버티지 못하며, 조조군은 대부분 북방 출신이라서 수전(水戰)에 약하다. 그리고 조조군은 남쪽 기후에 익숙하지 않아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어서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또, 조조군이 백만 명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20만 명 정도인데, 그것도 원소와 유표의 항병(降兵)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그리고 조조군은 보급로가 너무 길어서 군량과 마초의 조달이 여의치 못하며, 지금은 겨울철이라 양자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오군 최고의 전략가답게 조조군의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수전에 익숙한 오의 정예3만 명과 육군 위주의 유비군 2만 명 등 5만 연합군으로 능히 조조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마침내 손권은 누구든지 앞으로 항복을 말하는 자는 이와 같이 되리라.’하면서 칼로 탁자를 내려쳐 두 동강을 내며 싸우기로 결정을 내린다.

   주유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지만 원로장군 정보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는 창업주 손견 이래 3대째 활약한 장수로, 어려서 애송이처럼 보이는 주유가 승승장구하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는 가끔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유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선배장군을 성심으로 대했고, 마침내 정보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이 돌아선 정보는 주위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유와 함께 있으면 마치 오래 묵은 술을 마실 때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하게 된다.”

   원로 대선배의 이러한 찬사야말로 주유의 인품과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아니랴. 또 노장 황개가 적벽대전 직전에 주유에게 온몸이 으깨어지도록 매를 맞는 고육계(苦肉計)를 자원한 것도 주유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벽대전에서, 주유는 먼저 방통을 파견하여 조조의 선단을 서로 쇠사슬로 묶게 한 다음, 노장 황개가 사항계(詐降計)를 펼쳐서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선단을 잿더미로 만들고 곧바로 정예군을 투입하여 조조군을 여지없이 괴멸시킨다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결국, 그의 적극 과단한 성품과 뛰어난 지략이 찬란한 결실을 이루어, 조조의 백만대군은 여지없이 참패하여 대부분 불에 타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고 조조는 패주했다. 주유는 적벽대전의 최고 영웅으로 후세에 길이 빛나는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불행은 바로 다음에 찾아왔다.

   적벽대전 때는 제갈량과 함께 지모를 모았으나 그 전리품인 형주는 재빠르게 움직인 제갈량에게 선수를 뺏기고 만 것이다. 주유는 형주를 다시 뺏어오기 위해 유비군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고 만다. 중상을 입은 채 무리하게 전투를 계속하던 주유, 마침내 상처가 도져서 숨을 거둔다. 온건파인 노숙을 후임 도독으로 추천하고서.

   연의에는 주유가 제갈량과 지모를 다투다 패하여 분사(憤死)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또 다른 야사에는 주유가 쟁()이라는 악기를 잘 다루는 한 기생에게 빠져 황음(荒淫)하다 죽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마도 촉을 정통으로 세웠기 때문에 주유의 죽음을 그렇게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 화살 독에 의한 사망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오나라 창업에 공을 세운 영걸들은 거의 다 일찍 죽었다. 손견이 서른일곱, 그의 맏아들 손책이 스물여섯, 명장 태사자가 마흔, 그리고 주유가 이제 서른여섯에 죽고 말았으니.

   오주 손권은 주유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 이 무슨 날벼락인가. 이제 나는 누구를 의지한단 말인가!’하며 크게 탄식했다.

   주유는 오나라의 국운을 좌지우지할 만한 대들보였다. 그는 서촉을 공략하여 천하를 조조와 함께 둘로 나누고 장차 중원을 도모하려는 웅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도에 죽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제로 오나라는 주유가 죽고 난 뒤 중원을 넘보려던 적극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오직 수성에만 급급한 세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훗날 손권은 제위에 올랐을 때 도열한 중신들 앞에서 내게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유 덕분이다.’며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세운 공적을 칭송했다.

   주유는 제갈량에 버금가는 원대한 구상과 뛰어난 지모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의 패기만만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그가 죽을 때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듯 뱉은 말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의 유언은 너무도 유명하여 삼국지의 명구절로 꼽히며 지금도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늘이시여! 어찌 이 주유를 내시고 또다시 제갈량을 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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