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현(수필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2019년)’은 현대 프랑스 영화계에서 여성의 시선을 가장 지적이고 아름답게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 여류감독 셀린 시아마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퀴어 로맨스 드라마 영화이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았으며, 세자르상과 LA비평가협회의 촬영상을 받았다. 뤼미에르상의 촬영상과 여우주연상(노에미 멜랑)을 수상했으며, 유럽 영화상의 각본상과 촬영상을 받았다. 제작비 550만 달러를 투입하여 전 세계에서 1,0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익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울 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2020년에 극장에서 개봉하였으며, 총관객은 15만 8천 명을 조금 넘었다. 이에 고무되어 그동안 미개봉했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전 작 ‘워터 릴리스’(2007년)와 ‘톰보이’(2011년), ‘걸 후드’(2014년)를 2020년에 모두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자신의 장편 데뷔작 ‘워터 릴리스’와 단편 ‘폴린’에 이어 세 번째로 아델 에넬과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아델 에넬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고 하는데, 두 여성 셀린 시아마와 아델 에넬은 과거 한때 연인이었다.
1770년대 프랑스 어느 화실, 젊은 여성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 扮)가 그림 수업을 하고 있다. 한 학생이 그림 한 점을 지목하며 제목이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마리안느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대답한다.
몇 년 전, 마리안느는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고 브르타뉴 외딴섬의 고택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초상화를 의뢰한 사람은 귀족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아델 에넬 扮)라는 여성의 어머니 백작 부인인데, 엘로이즈가 결혼을 원치 않기 때문에 화가를 배척한단다. 그래서 백작 부인은 마리안느에게 화가임을 밝히지 말고 산책 친구인 척해달라고 당부한다.
마리안느는 그 집 하녀 소피(루아나 바지라미 扮)에게 엘로이즈에 관해서 물어보는데, 소피가 이렇게 대답한다. 엘로이즈 아가씨는 수녀원에 있었는데, 결혼을 앞둔 언니가 해변 절벽에서 추락사한 충격으로 수녀원을 나왔다고 한다. 소피는 아가씨의 언니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유는 함께 걷다가 추락했는데 비명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함께 해변을 산책하면서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 풍광과 함께 그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머리에 담는다.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엘로이즈를 관찰하면서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지만, 마리안은 엘로이즈 몰래 그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엘로이즈에게 초상화를 그리러 왔다고 고백하고, 그림 속의 엘로이즈 얼굴을 지워버린다. 백작 부인이 마리안느을 질책하자, 놀랍게도 엘로이즈가 자진해서 포즈를 취하겠다고 말한다. 백작 부인은 5일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데, 돌아올 때까지 그림을 완성해 놓으라고 당부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 소피와 함께 해변 산책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마치 세 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밤 엘로이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르페우스가 마지막에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를 잃게 된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임신한 소피가 낙태를 결심하자, 두 사람은 소피를 시술사에게 데려가 시술(施術)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본다.
마을 여인들의 캠프파이어 모임에 갔을 때 엘로이즈의 드레스에 불길이 옮겨붙는 일이 발생하는데, 후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림의 모티브가 된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동굴 입구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나누는데, 마리안느는 밤중에 집 복도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날 밤부터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을 나누게 된다.
초상화가 완성되고, 백작 부인이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로맨스도 끝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잊지 않기 위해 서로의 누드를 그려준다. 작별 인사를 나눈 마리안느가 눈길을 주지 않고 저만치 떠나가는데, 엘로이즈가 ‘뒤돌아봐!’ 하고 외친다. 마리안느는 뒤돌아서 엘로이즈를 쳐다보고 떠난다.
이후,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두 번 더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미술 전시회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통해서이고, 또 한 번은 대극장 음악회에서 비발디의 사계 ‘여름’을 들으면서이다. 이때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면서 영화가 끝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화가와 모델로서의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로, 씨네21에서 6명의 평론가 중 4명이 10점 만점을 주었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153명의 영화평론가에 의해 97%의 신선도를 획득했으며, 이들이 남긴 총평은 ‘세련된 시대극으로서, 빼어난 로맨스 연기를 통해 감성적이고 충만한 드라마를 제공한다.’이다.
프랑스 여성의 복식(服飾)은 아름답고 품위가 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초상화에 칠해진 물감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시선으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불멸의 사랑을 만들어 낸다. 그림이든 풍광이든 장면 하나하나 정지화면으로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이 영화 속의 그림들은 여성화가 엘렌 델메어가 그렸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 셀린 시아마 감독과 만나 다정하게 포옹하면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당신이 탔어야 했다.’라며 격려했다. ‘기생충’(2019년)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미국 배급사가 같은 회사라서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홍보 기간 내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