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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쟁호투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6. 1. 1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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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쟁호투(龍爭虎鬪)

 

최용현(수필가)

 

   ‘용쟁호투(龍爭虎鬪, 1973년)’는 쿵푸스타 이소룡(브루스 리)을 세계적인 레전드로 만든 로버트 클루즈 감독의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홍콩이지만, 언어는 미국시장을 겨냥하여 영어를 사용하였다. 영어제목은 ‘Enter the Dragon’이다.

   1970년대 초, 미국 워너브라더스는 정창화 감독의 ‘철인(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수입하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큰 재미를 보았다. 그 무렵 개봉한 이소룡의 ‘맹룡과강’(1972년)이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자, 워너브라더스는 이소룡의 소속사인 골든 하베스트와 합작으로 새로운 무술영화 제작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용쟁호투’이다.

   이 영화는 제작비 85만 달러를 투입하여 전 세계에서 9,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이며 대박을 터뜨리고 미국에 이소룡 열풍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관객 23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2004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영화등기부에 영구보존하는 영화가 되었다.

   미국 정보부에서는 헤로인을 밀조하여 판매하고 인신매매까지 벌이는 범죄조직의 두목 외손잡이 한(쉬 키엔, 석견 扮)을 체포하기 위해 소림사 출신 쿵푸의 달인 리(브루스 리, 이소룡 扮)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의 아지트는 홍콩 외곽의 작은 섬이고, 이 섬에서 3년마다 무술대회를 여는데 이 대회에 리의 출전을 부탁한 것이다.

   리는 이 부탁을 거절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누이동생이 한의 오른팔 오하라에게 겁탈당할 위기에서 자진(自盡)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출전을 결심한다. 리가 섬으로 들어갈 때 거액의 빚 때문에 범죄조직에 쫓기던 무술인 로퍼(존 색슨 扮)와 가라데 챔피언 출신의 흑인 윌리암스(짐 켈리 扮)도 같은 배를 타게 된다.

   리는 섬의 숙소에서 정보부에서 미리 침투시킨 메이 링과 접선하여 그녀로부터 밤에 한에게 불려간 여자들이 다음날 사라지는데, 자신의 차례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리는 밤에 몰래 줄을 타고 지하 동굴에 내려가다가 마주친 경비원들을 모두 처치하는데, 거기서 마약주사를 맞고 죽어가는 여인들을 보게 된다.

   다음날, 리는 무술대회의 첫 상대로 한의 오른팔인 오하라와 대결하게 되자, 압도적인 실력으로 오하라를 제압한다. 그런데 패배한 오하라가 깨진 병으로 뒤에서 공격하려하자,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며 죽은 누이동생의 복수를 한다.

   한은 어젯밤에 몰래 지하 동굴에 내려간 사람이 흑인 윌리암스라고 생각하고 그를 불러서 추궁하다가 곰 발바닥 같은 의수(義手)로 그를 찔러 죽인다. 다시 로퍼에게 접근한 한은 마약 제조시설을 보여주며 자기와 손잡고 미국을 맡아달라고 제안하면서 윌리암스의 시신을 보여준다. 지하 감옥에는 많은 남자들이 쇠창살 안에 갇혀있었는데, 모두 부랑자들이란다.

   다시 지하 동굴로 잠입한 리는 그곳에서 헤로인을 제조하는 것을 확인하고 정보부에 지원요청 무전을 보낸다. 그리고 한의 부하들과 싸우다가 함정에 빠져 붙잡히고 만다. 다음날, 한의 제안을 거부한 로퍼와 리는 대회장으로 끌려나온다. 리와 로퍼의 대결을 지시하는 한의 요구를 거부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한과 그의 부하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인다.

   이때 메이 링에 의해 풀려난 지하 감옥의 부랑자들도 지상으로 올라와 한의 부하들과 싸운다. 달아나는 한은 거울이 가득찬 방에서 칼날이 달린 쇠스랑 같은 의수를 끼고 따라온 리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리가 악전고투 끝에 한을 참살하고 나왔을 때, 로퍼도 부랑자들과 함께 한의 부하들을 모두 제압하고 쉬고 있었다. 그때서야 정보부 연락을 받은 헬기들이 날아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용쟁호투’는 이소룡의 무술에 대한 철학과 불꽃같은 열정을 담아낸 영화로, 전 세계에 쿵푸 열풍을 일으킨다. 주연급 배우 3명을 황인과 백인, 흑인으로 안배한 것은 이소룡의 독창적인 절권도가 동양권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권의 유색인종들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무술임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천개의 거울로 가득찬 방에서 리가 두목인 한과 싸우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데, 이 장면은 오슨 웰스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년)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다. 여기서 한의 쇠스랑(?)에 긁힌 이소룡의 복근에 피로 물든 ‘王’ 자가 새겨지는 명장면이 탄생한다.

   이 영화에는 80년대 홍콩영화의 트로이카인 성룡과 홍금보, 원표가 단역과 스턴트로 출연하고 있다. 성룡은 한의 부하로 나오는데, 막판에 집단으로 싸울 때 리에게 덤비다가 머리채를 붙잡히면서 팔이 꺾이는데 그 과정에서 성룡이 크게 상처를 입는다. 이소룡은 성룡에게 사과하고 다음번에 조연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소룡은 194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으며 7세 때 태극권을 배웠다. 10대 때는 엽문에게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많은 무술을 익히고 연마했다. 19세 때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苦學)으로 워싱턴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여 연극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배우로서는 ‘당산대형’(1971년)과 ‘정무문’(1972년)을 잇따라 흥행시키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자신이 각본을 쓰고 제작과 주연, 감독까지 맡은 ‘맹룡과강’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상급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용쟁호투’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6일 앞둔 1973년 7월 20일, 이소룡은 ‘사망유희’를 찍다가 약물과민반응에 의한 뇌부종으로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용쟁호투’가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소룡의 이전 작품들이 줄줄이 소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딘에 견줄만한 요절배우, 불멸의 배우로 이소룡을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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