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현대영화의 시작점이라는 평을 듣는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를 연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감독이 2022년 9월 13일,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안락사였다. 1960년, 그는 프랑스의 독창적이고 재능 있는 젊은 감독에게 주는 장비고상(Prix Jean-Vigo)과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은곰상)을 받았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네 멋대로 해라’(1959년)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면서 1960년을 전후한 유럽의 청춘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영화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실험적인 카메라 워킹과 파편적인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파격적인 시도로 전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시민 케인’(1941년) 이후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는 없었다.
불어제목 ‘A bout de souffle’는 ‘숨의 끝’이란 뜻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에 대한 일반적인 영화규범을 지키지 않는 점프 컷(Jump Cuts)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때문에 화면이나 대사도 건너뛰거나 비약이 많고, 사건들을 이어주는 스토리의 흐름도 기승전결과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는 영화학도들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누벨바그의 핵심 영화기법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35mm 카메라 들고 찍기(hand held), 자연광을 이용한 현지 촬영, 즉흥적인 플롯과 겉도는 대사, 소형 녹음기를 이용한 현장녹음, 점프 컷을 통한 간결한 편집 등이 그것이다.
할리우드 배우 험프리 보가트를 선망하는 좀도둑 미셸(장 폴 벨몬도 扮)은 대낮에 마르세유 부두에서 승용차를 훔쳐 타고 파리로 향한다. 친구를 만나 미국물건값(?)도 받고, 3주전에 니스에서 만나 함께 지냈던 미국 애인도 만나고…. 미셸은 시골길을 과속으로 달리다가 차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길 옆 풀밭에 차를 세운다. 그때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다가와 검문을 하려하자 미셸은 차안에 있던 권총으로 경찰을 쏘아 죽이고 도망친다.
파리에 도착한 미셸은 공중화장실에서 노신사의 돈을 강탈하여 용돈을 마련한 후 샹젤리제 거리에서 뉴욕헤럴드 신문을 팔고 있는 미국 애인 패트리샤(진 세버그 扮)를 만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패트리샤가 내일 만나자며 신문기자를 만나러 가자, 미셸은 몰래 뒤따라가는데 둘이 데이트하다가 차에서 키스하는 것을 본다.
다음날, 경찰살인범으로 자신을 추적하는 신문기사를 본 미셸은 패트리샤가 사는 곳을 찾아가 키를 받아서 룸으로 올라간다. 얼마 후에 패트리샤가 오자 두 사람은 죽음, 음악, 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지만, 각자의 생각만 얘기할 뿐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두 사람은 다음날 정오까지 방에서 뒹굴며 정사(情事)를 벌인다.
미셸은 ‘난 너 없이 못살아.’ 하면서 패트리샤에게 함께 로마로 가자고 말한다. 그런 미셸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 패트리샤는 막 사귀기 시작한 신문기자를 차버리고 추적해오는 형사들을 따돌리며 미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패트리샤는 정말로 자신이 미셸을 사랑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패트리샤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량절도를 일삼는 지명수배자 미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자, 경찰에 ‘미셸이 이곳에 있다.’고 신고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미셸에게도 알려주면서 빨리 도망치라고 말하는데, 미셸은 교도소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친구가 미국물건값을 가져오자 미셸은 친구에게 곧 경찰이 들이닥칠 거라며 빨리 가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미셸에게 권총을 던져주고 사라진다.
미셸은 그 총을 주워들고 쫒아오는 경찰들을 피해 달아나지만 경찰이 쏜 총에 등을 맞고 비틀거리며 뛰어가다가 도로 위에 쓰러진다. 미셸은 뒤쫓아 온 패트리샤와 경찰들을 올려다보며, ‘정말 역겨워!’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그러자 패트리샤는 ‘역겹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하고 반문하고는, 미셸이 습관처럼 험프리 보가트 흉내를 내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좌우로 문지르고 돌아서면서 영화가 끝난다.
‘네 멋대로 해라’는 약 4주 만에 완성된 저예산 영화로, 점프 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압축하면서 주요 행위만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요즘에는 이런 점프 컷이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도 흔하게 사용되지만, 1959년 당시에는 이런 편집방식이 매우 혁신적이었고 누벨바그 스타일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남녀주인공의 상반되는 캐릭터가 빚어내는 부조화이다. 프랑스 출신의 미셸은 아무런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염세주의자이다. 반면 미국 출신의 패트리샤는 지적(知的)이고 합리적이며 자신의 육체를 이용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으려하는 현실주의자이다. 이들 사이에는 섹스만 있을 뿐, 진정한 의사소통은 없다. 결국 패트리샤는 미셸을 경찰에 신고하고, 미셸은 도망가는 것이 귀찮아서 머뭇거리다 죽는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동기 없는 살인과 동기 없는 사랑, 동기 없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불통(不通), 권태,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남녀주인공의 모습은 전후(戰後) 급격한 현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서구 젊은이들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미국의 짐 맥브라이드 감독은 야성미 넘치는 리처드 기어와 프랑스의 신예 발레리 카프리스키를 기용하여 ‘브레드리스(Breathless)’라는 제목으로 ‘네 멋대로 해라’를 리메이크했다. 미국 LA를 무대로 원작의 스토리 구조를 최대한 살려서 만들었는데,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그런지 당시 야하다는 소문을 타고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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