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바둑경기가 벌어졌다. 이세돌 9단은 세 판을 내리지고 네 번째 판에서 승리했고 다섯 번째 판에서 또 졌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은 인간 대표의 1승에 기뻐하면서도 4승을 한 알파고의 실력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매트릭스(The Matrix)’는 200년 후에 AI에게 지배되는 인류의 모습을 다룬 영화이다.
1999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앤더슨(키아누 리브스 扮)은 밤이 되면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활동하면서 늘 무언가를 찾고 있다. 어느 날 네오는 ‘너는 매트릭스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그 메시지의 안내대로 찾아간 클럽에서 트리니티(캐리앤 모스 扮)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네오에게 ‘당신은 지금 위험에 처해있으며, 매트릭스에 대해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날, 네오는 회사에서 스미스(휴고 위빙 扮)가 이끄는 해커 퇴치요원들에게 납치된다. 그들은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 扮)에 대해서 묻다가 네오의 입을 봉하고 배꼽에 도청용 기계벌레를 삽입하는데, 그 순간 네오는 잠에서 깨어난다. 모피어스의 전화를 받은 네오는 약속장소에서 트리니티와 함께 온 동료들의 차를 타고 가는데, 이들은 네오의 몸에서 기계벌레를 제거한 후 모피어스에게 데려간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알약 두 개를 주면서 파란 약을 먹으면 이전의 현실로 되돌아가고,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네오가 빨간 약을 먹자, 온몸에 수은 같은 물체가 덮여지더니 액체로 채워진 인큐베이터 안에서 전신 튜닝을 받고 알몸으로 깨어난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2199년의 세상에 나온 네오는 모피어스와 그의 동료들이 있는 우주선에 승선한다.
인류는 21세기 초에 인공지능 AI와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기계가 지배하는 가상현실인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모피어스는 이를 자각하고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선각자이다. 모피어스는 트리니티, 사이퍼, 탱크 등 10여 명의 동료들을 이끌면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구세주를 찾고 있는데, 그 구세주가 바로 네오라고 믿고 있다.
탱크는 매트릭스를 해킹하여 동료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권법(拳法) 등을 알려주고 있는데, 모피어스는 그 외의 다른 비법도 네오에게 전수해준다. 그런데 트리니티에게 치근대던 사이퍼가 모피어스에게 불만을 품고 배신하여 비밀리에 스미스 요원을 만난다.
모피어스의 동료들은 사이퍼의 의도적인 실수로 스미스가 이끄는 해커 퇴치요원들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모피어스가 동료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자신이 대신 잡혀간다. 사이퍼는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와 탱크를 비롯한 동료들을 처치하지만, 탱크가 죽지 않고 살아나 사이퍼를 처단함으로써 네오와 트리니티는 목숨을 건진다.
네오는 목숨을 걸고 모피어스를 구하러 가는데 트리니티도 따라나선다. 두 사람은 건물 옥상에 있는 헬기를 이용하여 모피어스를 구출해낸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우주선으로 돌아가지만, 네오는 남아서 해커 퇴치요원들과 결전을 벌인다. 네오는 스미스 요원의 총을 여러 방 맞고 쓰러져 숨을 거두지만, 다시 살아나 초인이 되어 날아오는 총알을 정지시키고 스미스 요원의 몸을 뚫어 해체시키는가 하면 공중을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매트릭스’는 각본을 쓴 워쇼스키 형제가 호주에서 촬영하고 감독한 SF액션영화로 200년 후의 미래를 그렸다. 기상천외한 내용과 상상력으로 전 세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1999년에 만든 영화지만 요즘 만든 영화들보다 더 쌈박하다.
이 영화는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컴퓨터가 만든 가상현실인 매트릭스에서 AI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통제하는 2199년의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류의 선각자인 모피어스가 동료인 트리니티, 네오 등과 함께 AI의 해커 퇴치요원들과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그런데 막판에 네오가 죽었다가 부활하여 인류의 구세주로 등극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주인공 네오가 상체를 완전히 뒤로 젖히면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모습인데,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화면을 컴퓨터로 조합하여 마치 무비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불릿 타임(bullet-time)과 타임 슬라이스(time-slice) 기법을 쓴 것인데, 그래서 시각효과상을 받은 것이리라. 지금 봐도 경탄할 만한 장면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에 의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AI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울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보여주면서 후손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주인공 네오 역은 윌 스미스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차례로 제안을 하였으나 둘 다 거절하는 바람에 키아누 리브스로 낙점되었다. 또 모피어스 역할은 러셀 크로우, 사무엘 잭슨, 숀 코네리 등과 섭외를 했으나 여의치 않아 거의 무명인 로렌스 피시번이 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이 영화가 그들의 인생작이 되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1965년생인 형 라나 워쇼스키와 1967년생인 동생 앤디 워쇼스키의 두 사람이다. 이들 중에서 형 라나가 성 정체성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되어 워쇼스키 남매가 되었다. 얼마 후에는 동생 앤디까지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되어 이름까지 릴리 워쇼스키로 바꾸면서 지금은 워쇼스키 자매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야말로 영화보다 더 짜릿한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