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험준한 설산(雪山)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넓은 평원의 호숫가로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오고 있다. 셰인(앨런 래드 扮)이란 이름의 이 사나이는 스타렛(벤 헤플린 扮)의 외딴집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저녁식사에 초대 받아 하룻밤을 보낸다.
개척민들이 띄엄띄엄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스타렛은 아내 마리안(진 아서 扮)과 어린 아들 조이(브랜든 드 와일드 扮)와 함께 이곳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가축을 기르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목축업을 해온 라이커 일당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들을 괴롭히며 쫓아내려 하고 있다.
집에 머물면서 일을 도와달라는 스타렛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셰인은 자신이 입을 작업복과 일용품을 사러 마을 가게에 갔다가 라이커 일당에게 수모를 당하지만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는 스타렛의 당부 때문에 참고 집으로 돌아온다. 조이는 셰인을 따라다니며 총 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른다.
마을 주민들이 여럿이 함께 마을 가게로 갔을 때, 또 라이커 일당이 시비를 걸어오자, 셰인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이들과 주먹으로 싸운다. 그러나 일당이 너무 많아 셰인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스타렛이 나서서 함께 싸워 일당들을 제압한다. 마리안은 세련된 외모에 터프한 매력까지 갖춘 셰인에게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된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마을 가게에 갔다가 라이커가 고용한 윌슨(잭 팰런스 扮)이라는 악명 높은 총잡이에게 사살되자, 겁을 먹은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라이커 일당은 이 기회에 스타렛을 유인해 죽이려고 하는데, 스타렛은 자신이 라이커를 죽이겠다며 총을 들고 집을 나서려한다.
셰인은 스타렛이 청부총잡이 윌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대신 나가려고 스타렛과 격투를 벌인다. 결국 셰인은 권총으로 스타렛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마을로 향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셰인에게 비겁하다며 화를 냈던 조이는 셰인의 깊은 뜻을 알고 사과하러 뒤쫓아 간다.
셰인은 마을 술집에서 기막히게 빠른 솜씨로 총을 쏘아 윌슨과 라이커를 쓰러뜨리고 총을 멋지게 돌리며 권총집에 꽂아 넣는다. ‘윌슨은 총도 뽑지 못했어요,’ 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조이에게 셰인은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속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어. 엄마에게 이제 이 마을에는 총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라.’는 말을 남기고 말을 타고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셰인! 돌아와요 셰인!’ 하고 소리치는 조이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영화 ‘셰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서부영화의 강렬한 아이콘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개척민의 마을에는 두 사람의 이방인이 등장하는데, 선(善)을 대변하는 셰인은 밝은 가죽옷을 입고 나타나고, 악(惡)을 대변하는 윌슨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 외관으로도 선명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플롯의 단순함이 이 영화의 힘이 아닌가 싶다.
첫 화면에서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서 목을 축이는 사슴, 그 사슴에게 장난감 총을 겨누는 어린 조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개척민들의 전원적인 생활상과 소박한 꿈의 일단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리라. 조지 스티븐스 감독은 타이틀 롤을 맡은 주인공 셰인보다는 어린 조이를 더 배려하면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막판의 셰인과 윌슨의 결투 못지않은 흥미로운 대결이 나오는데, 그것은 자신이 악당들과 싸우겠다는 셰인과 스타렛의 뜨거운 우정의 싸움이다. 마리안과 조이는 방에서 이쪽저쪽 창문을 옮겨 다니며 마당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카메라가 밖을 비추면, 놀라서 날뛰는 말들의 다리 사이로 두 사람의 싸우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안의 가축들이 발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싸움 상황에 대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기법이다.
스타렛을 물리치고(?) 말을 타고 마을 술집으로 향하는 셰인, 그 뒤를 조이와 개가 뒤따라가는 장면은 전형적인 교차편집이다. 화면은 셰인, 조이, 개의 모습을 계속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카메라도 앙각(仰角)의 트래킹 숏으로 이어진다. 혼자서 악당들과 싸우러 가는 셰인은 이제 작업복을 벗고, 마을에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다.
마을 술집에서의 결투장면은 조이의 눈을 통해서 보인다. 술집 안의 상황은 출입문 아래에서 안을 주시하고 있는 조이의 얼굴과 계속 교차되면서 조이의 시점과 숏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투가 임박하다는 것은 홀에 앉아 있던 커다란 개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암시한다.
악당들을 물리친 셰인은 이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셰인과 마리안 사이에 애틋한 연정이 싹트는 것도 그렇고, 조이에게 셰인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우상이 되어가는 점도 그러하다. 조이 역을 놀랍도록 잘 소화해낸 꼬마 브랜든 드 와일드는 안타깝게도 30세 때인 1972년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영화 ‘셰인’은 1953년에 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개봉되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소년 브랜든 드 와일드와 잭 팰런스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받은 상은 촬영상이었다. ‘셰인’ 역을 맡았던 앨런 래드는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아카데미 측의 실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8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셰인’의 스토리를 약간 변형한 ‘페일 라이더(Pale Rider)’라는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맡으며 ‘셰인’을 오마주했는데, 흥행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남자 어린이 대신 여자 어린이가 나온다. 어쨌거나, 서부개척시대 한 마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셰인’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불멸의 영화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