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열전

조조의 사촌동생 ‘조인과 조홍’

월산처사, 따오기 2019. 3. 18. 06:15

조조의 사촌동생 조인과 조홍

 

최용현(수필가)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조조가 널리 의병을 모집했을 때, 여섯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찾아왔다. 이전과 악진, 하후돈과 하후연, 조인과 조홍이다. 이들 중에서 이전과 악진을 제외한 네 장수는 모두 조조의 사촌동생들이다.

   조조는 본래 하후씨였으나 조조의 아버지가 막강한 권력과 부를 지닌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 조숭이라는 이름을 받았기 때문에 씨가 되었다. 하후돈과 하후연 형제는 조조의 생가 쪽 사촌들이고 조인과 조홍 형제는 양자로 간 친가 쪽 사촌들이다. 이들의 관계도 친형제설, 4촌 형제설, 6촌 형제설 등 여러 견해가 있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조조의 군영에는 이들 사촌들 외에도 기라성 같은 무장들이 있었고, 조조는 뛰어난 용병술로 이들 모두의 충성을 이끌어낸다. 동작대 준공에 맞춰 조조는 비단 전포를 상품으로 걸고 친족팀과 일반팀으로 나누어 활쏘기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열띤 경합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조조는 출전한 장수 모두에게 비단 한 필씩을 내린다. 빛나는 용병술 아닌가.

   조조의 사촌들 중에서 하후돈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조인과 조홍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인의 자()는 자효(子孝)이다. 원소를 평정한 조조는 형주의 신야에 웅거하고 있는 유비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요충지인 번성의 책임자로 조인을 배치한다. 조인은 팔문금쇄진을 치며 유비를 공격했으나 서서를 군사(軍師)로 영입한 유비에게 참패하여 번성마저 뺏기고 마는데,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번성을 탈환하고 형주까지 무혈 접수한다.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게 패한 조조는 형주의 남군과 양양의 수비를 조인과 하후돈에게 맡긴다. 동오의 대도독 주유가 남군으로 쳐들어오자, 조인은 부장 우금, 아우 조홍과 함께 격전을 치르던 중 활을 쏘아 주유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결국 남군과 양양은 제갈량이 지략을 펼친 유비에게 뺏기고 만다.

   다시 번성의 책임자가 된 조인은 형주의 관우가 북상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관우가 맹공을 해오자 조인은 패퇴를 거듭했고, 조조가 우금과 방덕을 지원군으로 보내지만 이들마저 관우의 수공(水攻)에 괴멸된다. 그러나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가 주춤하는 사이 동오군이 형주를 기습 점령하는 바람에 번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 황제로 즉위하자, 조인은 대장군을 거쳐 대사마에 오른다. 이릉대전에서 승리한 동오군이 유비를 뒤쫓을 때 조인은 조휴, 조진과 함께 동오를 급습하지만 패퇴한다. 조조가 죽고 3년 후인 56세에 눈을 감는다.

   자가 자렴(子廉)인 조홍은 요즘말로 상당히 엣지있게 삼국지에 등장한다.

   동탁을 뒤쫓던 조조는 동탁 진영의 장수 서영을 만나 어깨에 화살을 맞고 타고 있던 말까지 창에 찔리는 바람에 땅에 고꾸라진다. 적병들이 막 조조를 찌르러할 때, 조홍이 나타나 이들을 물리치고 조조를 일으켜 세우면서 자신의 말을 내주었다. 조조가 너는 어쩌려느냐?’ 하고 묻자, 조홍은 저는 뛰어가면 됩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귀공은 없으면 안 됩니다!”

   강가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적군들이 계속 뒤쫓아 오자, 조홍은 조조를 업고 강물에 뛰어들어 건너편 언덕까지 헤엄쳐서 조조를 구해낸다.

   전장에서의 조홍은 승전 기록이 별로 없다. 그러나 관도대전이 끝나고 청주의 남피성에서 원소의 아들들과 격전을 벌일 때 용감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가 원소의 장남 원담의 목을 벤 것은 그의 빛나는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마초정벌에 출전했던 조홍은 조조로부터 열흘간 꼼짝 말고 성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성미 급한 조홍은 적군들의 욕설을 참지 못하고 9일째 되는 날 성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성을 잃게 되어 조조로부터 참수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조조는 마초에게 쫓기면서 수염을 자르고 전포까지 벗어던지며 달아나다가 마초와 마주치는데, 그때 조홍이 뛰어나와 마초와 격전을 벌이면서 조조를 구해내고 자신도 기사회생하게 된다.

   조홍은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색하여 세자 시절의 조비가 비단 100필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황제가 된 조비에게 다른 꼬투리가 잡혀 사형당할 뻔했으나 조비의 모후인 변태후의 구명 덕분에 살아나기도 했다. 조비가 죽고 그의 아들 조예가 즉위하자 표기장군에까지 올랐다가 병사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조인은 대장급, 조홍은 부장급이라고 할 수 있다. 조인과 조홍, 하후돈과 하후연 등 조조의 사촌들은 전위 허저 서황 장료 장합 등 일반 무장들에 비해 승전기록이나 일기토의 승리기록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조의 두터운 신임과 보살핌을 받았다. 특히 조인과 하후돈은 맏이라는 이유로 무장의 서열에서도 특별배려를 받았다.

   조조는 사촌들에게 왜 그런 배려를 해주었을까? 의심 많은 조조는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줄 사람이 사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조조와 함께 마차를 탈 수 있었고, 조조의 침실에까지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장이 하후돈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조조를 두 번이나 구해준 사람도 조홍이 아니었던가.

   또 한 가지, 조조가 세력을 키우던 초창기에는 군영 내부의 다툼이나 지역 반란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조인과 조홍 등 사촌들이 이들을 위무하거나 진압하는 일을 맡았다. 또 초창기에는 전장에 나갈 때도 사촌들은 남아서 후방에서 군량과 마초를 보급하는 일을 주로 맡았는데 그런 궂은일을 해온 데 대한 보상으로 배려를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조조는 뛰어난 용병술로 발군의 기량을 지닌 일반 무장들과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친족 무장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이들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했다. 조조의 아들 조비와 손자 조예 대()까지는 그런대로 이들 두 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하였으나,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친족들이 위축되어 결국 사마 씨에게 나라를 뺏기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