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최용현(수필가)
‘너 참 불쌍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청춘’ 지에 연재되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한글 제목이다. ‘불행한 사람들’이나 ‘비참한 사람들’ 쯤이면 무난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돌직구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후에는 ‘애사(哀史)’ ‘장발장의 설움’ ‘몸 둘 곳 없는 사람’ 등으로 번안(飜案)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원 제목이 그대로 정착되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발표한 ‘레미제라블’은 그동안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장 가방(1958년), 리노 벤츄라(1982년), 장 폴 벨몽도(1995년), 그리고 할리우드의 리암 니슨(1998년) 등 내로라하는 명우들이 장발장 역을 맡았지만 어느 영화도 크게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2012년, 영국 출신의 젊은 감독 톰 후퍼가 뮤지컬 영화로 만든 ‘레미제라블’은 배우를 캐스팅할 때부터 세계적인 화제가 되더니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591만 명이 관람했고, 원작소설도 영화개봉 후에 15만부나 팔렸다. 다양한 패러디 영상도 쏟아져 나왔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 국왕인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불안한 정정(政情)이 계속되자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조카들을 부양하던 품팔이 노동자 장발장(휴 잭맨 扮)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형을 받는다. 여러 번 탈옥을 시도하던 장발장은 형이 가중되어 지중해 갤리선에서 노예처럼 혹독한 노역(勞役)을 하게 된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하여 몰락하자, 외국으로 망명했던 루이 16세의 동생들이 돌아와 차례로 즉위하면서 왕정이 복고된다. 이때 장발장은 19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한다. 그러나 그는 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있어서 말썽을 일으키면 언제든지 재수감되는 신분이었다.
중년의 나이가 된 장발장은 일자리를 얻기는커녕 하룻밤 잘 데도 없는 신세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데, 성당의 밀리에르 주교가 그에게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장발장은 그 성당에서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가 체포되어 다시 끌려온다. 그러나 밀리에르 주교가 ‘내가 선물로 준 것’이라고 말해준 덕분에 풀려난다.
1823년, 개과천선(改過遷善)한 장발장은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 소도시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공장주 겸 시장(市長)이 된다. 장발장을 추적하던 자베르 경감(러셀 크로 扮)이 그 시에 부임해온다. 장발장의 공장에 사생아인 딸을 몰래 양육하다가 발각된 판틴(앤 해서웨이 扮)이란 여공이 있었다. 판틴에게 찝쩍대던 작업반장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를 해고한다.
호텔을 운영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딸을 맡겨놓고 매월 양육비를 보내던 판틴은 머리를 잘라 팔고 어금니까지 뽑아 팔지만 돈이 부족해서 창녀가 되었다가 중병에 걸리고 만다. 수녀원에 누워있는 판틴을 찾아간 장발장이 딸 코제트를 맡아서 키우겠다고 약속하자, 판틴은 마침내 숨을 거둔다. 이때 마들렌의 정체를 알게 된 자베르가 체포하러 오지만, 장발장은 판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망친다.
한편, 테나르디에 부부는 어린 코제트를 하녀처럼 부려먹으며 학대한다. 장발장은 거금을 지불하고 코제트를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집요하게 추적해오는 자베르의 눈을 피해 파리 근교의 한 수도원에 숨어든다.
1832년, 젊은 학생들과 가난에 찌든 민중들은 ‘싸우다 죽자!’는 구호를 외치며 파리 시내로 모여든다. 숙녀가 된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扮)는 장발장과 함께 거리를 걷다가 마리우스라는 청년과 눈이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민중들의 존경을 받던 레마르크 장군이 죽자, 젊은이들은 레마르크의 장례식 날 함께 모여 시가행진을 하기로 한다. 마리우스는 왕정을 뒤엎기 위해, 장발장은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행사에 참가한다.
정부군은 이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젊은이들은 주민들이 던져준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부군과 맞선다. 자베르는 신분을 숨긴 채 민중들 속에 있었으나,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포로가 된다. 장발장은 자베르를 죽이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몰래 풀어준다.
마리우스가 정부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자,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들쳐 메고 하수구로 숨어들어간다. 자베르는 죽어가는 청년을 메고 하수구를 지나가는 장발장을 만나지만 그냥 보내준다. 자베르는 악인이라고 확신했던 장발장이 여러 번 선행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굳게 믿어온 신념이 무너지자,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코제트의 정성어린 간호로 마리우스가 건강을 회복하자, 장발장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코제트와의 인연,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마리우스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코제트의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수도원으로 떠난다.
결혼식을 마친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함께 수도원을 찾아간다. 기력이 다한 장발장은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눈을 감는다. 천국에서 판틴을 만난 장발장은 영원한 안식을 하게 되고, 민중들은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르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출연진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삽입곡 ‘Suddenly’와 ‘One Day More’를 부르며 수상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지만, 음향상과 분장상 등 3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굳이 위안을 찾는다면 판틴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뮤지컬 영화는 거의 외면을 했었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고전인 ‘왕과 나’(1956년)와 남태평양(1958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년), ‘쉘부르의 우산’(1964년) 등은 TV에서 보았다. ‘맘마미아’(2008년)를 본 후 4년 만에 ‘레미제라블’을 보러 극장에 갔다.
전체적인 미장센은 뛰어나다는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이미지의 휴 잭맨과 후덕한 이미지의 러셀 크로의 배역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뮤지컬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고, 옆에서 훌쩍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낯선 기분이 들었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내 선입견의 벽부터 하루 속히 깨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