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7. 16:24

친 구

 

최용현(수필가)

 

   ‘친구 2’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저히 안보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개봉한 첫 주말에 영화관을 찾았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어도 그런대로 볼만했다. 보고나니 옛날에 본 친구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10여 년 만에 친구를 다시 보았다.

   “추억은 마치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처럼 내 머리 속을 떠다닌다. 나는 이제부터 기억의 노를 저어 차례차례 그 섬들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영화 친구는 한 중년 남자의 이런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고, 곧이어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네 꼬마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은 함께 좀도둑질도 하고, 이소룡 흉내도 내고, 야동도 보고, 바다에서 수영도 하면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다. 이들은 중학교 때 뿔뿔이 흩어졌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같은 학교에서 만난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4총사. 부산의 유명한 폭력조직 두목의 아들이며 이 학교의 싸움짱인 준석(유오성 ),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이지만 준석 다음으로 싸움을 잘하는 동수(장동건 ), 공부로 전교 1, 2등을 다투던 유복한 가정의 공부짱 상택(서태화 ), 밀수꾼 부모 덕분에 일찍 일본문물(?)을 접한 재간둥이 중호(정운택 ).

   어느 날, 이들은 근처 여고의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연극이 끝나고 난 후를 부르는 리더싱어 진숙(김보경 )에게 홀딱 반한다. 며칠 후 준석은 범생인 상택에게 진숙을 소개시켜주는데, 이에 삐친 동수는 준석에게 내가 니 시다바리가?’ 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후일 준석과 동수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넷이서 극장에 갔다가 전에 상택에게 시비를 걸었던 다른 학교 학생들과 대판 싸움이 붙는다. 결국 이 일로 준석과 동수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중호는 전학을 가게 된다.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 상택은 집에서 돈을 훔쳐 준석을 찾아가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준석은 상택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대학생이 된 상택과 중호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찾아보니 준석은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마약에 빠져서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고, 동수는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상택의 첫사랑이었던 진숙이 준석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 준석은 상택에게 나중에 내가 늙어서 건달을 못하게 되거든 개인택시 하나 빼달라고 부탁한다.

   세월이 흘러 중호는 결혼하여 횟집을 차렸고, 상택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조직의 행동대장이 되었고, 동수는 다른 조직에 들어가 행동대장이 되었다. 두 조직은 이권문제로 자주 부딪쳤다. 서로 밀고(密告)하고 죽이고 죽고.

   이 무렵, 준석이 상택에게 쓴 편지를 보면 동수로 인한 갈등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진다.

   “친구가 우리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친할 친()’ 자에 옛 구()’ 자를 쓰는 한자더라.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는 뜻이란다. 억수로 멋있는 말 아이가? 아버지는 늘 남자는 의리가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요새는 뭐가 의리인지 좀 헷갈린다.”

   동수를 찾아간 준석은 오늘 상택이 유학을 떠나는데 함께 공항에 마중 나가자면서, ‘하와이에 가서 푹 좀 쉬었다가 들어올래?’ 하고 동수에게 제의한다. 그러나 동수는 니가 가라. 하와이하면서 거절한다.

   준석이 나간 후, 상택을 배웅하러 공항으로 나가던 동수는 길에서 갑자기 괴한의 습격을 받아 무참히 난자(亂刺)당한다. 쓰러진 동수는 칼로 계속 배를 쑤셔대는 그 괴한에게 마이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 사건(1993.7.8)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을 보면, 20세기파인 동수는 한밤중에 부산 동광동 앞길에서 칠성파로 추정되는 두 명의 괴한에게 가스총으로 습격을 받아 기절한 뒤 칼에 네 번 찔린 채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진 것으로 나온다.

   법정에 선 준석에게 검사가 동수를 살해하라고 지시를 내렸나?’고 물었을 때, 중호가 답변요령을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준석은 제가 지시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교도소로 면회 온 상택이 왜 그랬냐고 묻자, 준석은 쪽 팔려서 그랬다.’고 말한다.

   다시 감방으로 들어가는 준석의 뇌리에, 어릴 때 넷이서 함께 영도 앞바다에서 커다란 고무튜브를 타면서 조오련과 바다거북이가 헤엄치기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 하며 재잘대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네 친구의 우정과 갈등, 파멸을 그린 영화 친구는 이 시대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와 함께 조폭을 미화한 저질영화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상영기간 112일 동안 818만 명이 관람하여 당시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폭력교사로 나오는 김광규 씨가 남긴 너거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대사는 친구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두 주인공은 눈부신 열연을 펼쳤다. 준석의 굵직한 음성과 눈빛에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동수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눈빛에는 냉소가 담겨있었다. 이들의 부산사투리는 거의 완벽했는데, 알고 보니 하루에 4~5시간씩 2주일 동안 곽경택 감독에게 특별교습을 받았다고 한다. 첫 화면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중년남자는 상택이고, 그가 바로 이 영화를 만든 곽경택 감독이다.

   ‘친구 2’는 준석(유오성 )17년 만에 출소해보니 자신의 세력은 모두 쫓겨나고 다른 조직에 있던 은기(정호빈 )가 들어와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찬밥 취급을 받던 준석이 교도소에서 만난 젊은 성훈(김우빈 )을 오른팔 삼아 옛 동료들과 함께 조직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막판에 크게 한판 붙는 줄 알았는데 좀 싱겁게 끝난다.

   이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은기는 성훈에게 생부(生父) 동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왜곡해서 들려주어 성훈을 잠시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동수를 죽인 조직원의 증언으로, 동수의 죽음에 대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다.

   ‘친구 2’에서, 죽은 동수에게 유복자 아들 성훈이 있었고, 성훈의 어머니로 진숙(장영남 )이 나오는데 왠지 억지로 꿰맞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준석 아버지(주진모 )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대부 2’(1974)를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차라리 상택이나 중호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좀 다루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