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세이

킬링 필드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20:38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

 

최용현(수필가)

 

   197387, 뉴욕타임스 특파원 시드니(샘 워터스톤 )는 미국 공군이 캄보디아의 니크루움을 폭격하여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케 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프놈펜에 도착한다. 그는 곧바로 미군 지휘관을 찾아가지만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에게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시드니는 현지채용기자인 프란(S. 응고르 )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참혹한 공습현장을 찾아가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다가 크메르 반군이 수도 프놈펜까지 밀고 내려오자, 시드니는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프란의 가족을 미국으로 피신시킨다. 크메르 반군의 반동분자 색출과 무자비한 살상이 시작되고, 두 사람은 남아서 취재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저널리스트 진 라코처는 그의 저서 이어 제로(Year Zero)’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크메르 공산정권 4년 동안 캄보디아 전체인구 700만 명의 약 1/3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이 학살됐다고 주장했는데, 나중에 추궁을 받게 되자 과장된 숫자라고 해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만이라는 숫자는 공식적인 자료처럼 통용되고 있다. 실상은 어떤가?

   미국은 캄보디아에 있는 베트콩의 군수품 수송로인 호치민 루트를 봉쇄하기 위해 1969년부터 4년간 제2차 대전 때 일본에 투하한 폭탄의 3배에 달하는 54만 톤을 캄보디아에 퍼부었고 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5년부터 시작된 공산 크메르 치하에서 20만 명이 학살되었고, 70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 중노동에 시달리며 사망했다. 이를 합치면 10년 동안 약 150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미군이 저지른 악업(惡業)은 지워지고 덤터기는 모두 크메르루주가 뒤집어썼다.

   크메르(Khmer)는 캄보디아의 옛 이름이고, 루주(Rouge)는 립스틱의 붉은 색깔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그러므로 크메르루주는 () 크메르즉 폴 포트가 이끄는 캄보디아 공산당을 의미한다. 이들은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며 도시인들을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켜 혹사시켰고, 부유층과 지식인, 스님들까지도 고문,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프란이 크메르루주 치하에서 겪었던 비참한 생활과 탈출과정이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프란은 택시기사를 했다고 신분을 숨겨 간신히 살아남는데, 배가 고파서 몰래 소의 목을 면도날로 그어 피를 빨아먹다가 들켜서 개처럼 목줄을 단 채 나무에 묶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탈출을 감행하여 천신만고 끝에 태국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난민촌에 도착한다.

   프란과 시드니가 4년여 만에 재회하여 감격적으로 포옹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이때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지난 소치올림픽 갈라쇼 때 김연아가 이 곡을 선택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무소유와 무위자연, 박애를 통하여 세계평화를 이루어나가자는 노랫말에 반전(反戰)의 메시지가 뚜렷하다. 앞부분의 가사를 적어본다.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It's easy if you try (노력해보면 쉬운 일이에요)

       No hell below us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Above us only sky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모두 오늘을 위해 사는 삶을 상상해 봐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It isn't hard to do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Nothing to kill or die for (누구를 죽이거나 누구를 위해 죽을 일도 없고)

       No religion too (종교도 없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모두 평화롭게 사는 삶을 상상해 봐요)

 

   시드니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실존인물 프란은 뉴욕타임스의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고국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다. 이 영화의 제목인 킬링 필드(Killing Fields)’ 죽음의 들판이라는 말은, 프란이 탈출하면서 크메르루주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해가 들판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처음 쓴 표현이다.

   시드니는 캄보디아에서 프란과 함께 겪었던 실화를 디스 프란의 생과 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 198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를 롤랑 조페 감독이 1984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화한 킬링 필드는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롤랑 조페는 미션’(1986)시티 오브 조이’(1992)를 연출하여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다.

   프란 역을 연기한 캄보디아 배우 행 S. 응고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주인공이었으면서도 주연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내란 중에 손가락을 잃은 손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 조국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도와준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행 S. 응고르는 1996LA자택 부근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고, 범인은 캄보디아계 동족이었다. 실존인물 프란은 200865세를 일기로 미국 뉴저지의 한 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킬링 필드가 공산독재정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재였다. 이런 호기(好機)를 놓칠 리 없는 당시 군사정권의 독려로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줄을 이었고, 그 덕분에 1980년대 국내에서 상영한 영화중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보는 내내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신이 정말 계신다면, 의사나 교수, 학생들을 서구의 앞잡이라며 마구잡이로 죽이고, 안경을 썼으니 똑똑해 보인다며 죽이는 이 처참한 살육현장과, 논두렁 아래 뒹굴고 있는 저 시체더미와 유골들을 보고 뭐라고 하실지 정말 궁금하다.

   “신이시여! 변명이라도 좋으니 말씀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때 어디에 계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