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최용현(수필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1920년대 대공황과 금주법(禁酒法) 시절을 배경으로 뉴욕 빈민가에서 약간 불량스럽게 자란 소년들의 아웃사이더적인 욕망과 우정, 그리고 배신과 좌절을 그린 갱스터 영화이다.
‘황야의 무법자’(1964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년) 등 서부영화로 유명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연출한 마지막 작품으로, 해리 그레이의 자전소설을 바탕으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서 만든 영화이다. 그의 오랜 음악 파트너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애잔한 팬 플루트 선율과 OST들이 상영시간 내내 폐부(肺腑)에 스며들며 감성을 자극한다.
영화는 차분하면서도 감상적인 성격의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 扮)의 기억을 따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영화의 진행순서를 무시하고 소년기(1921년), 금주법이 철폐된 시기인 장년기(1933년), 그리고 현재인 노년기(1968년)로 구분해서 줄거리를 살펴보자.
소년기. 동네 친구들인 누들스와 팻시, 짝눈, 막내는 함께 몰려다니며 뒷골목에서 좀도둑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들스는 식당집 아들인 뚱보의 여동생 데보라를 좋아하는데, 데보라가 창고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발레연습을 하는 것을 화장실 틈을 통해 훔쳐보곤 한다. 이를 알고 있는 데보라는 앙큼하게도 옷을 갈아입으면서 벌거벗은 뒷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 이들은 거리에서 술 취한 남자의 지갑을 털려다가 프랑스에서 막 이민 온 맥스에게 선수(先手)를 뺏긴다. 수완이 좋은 맥스를 영입하여 조직(?)을 보강한 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밀수품을 안전하게 옮겨주고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그리고 수입의 절반을 가방에 담아 역(驛) 사물함에 넣어두고 열쇠는 뚱보가 보관하기로 한다. 누들스는 막내를 쏘아 죽인 조직의 보스를 무자비하게 난자(亂刺)하여 복수를 하고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간다.
장년기. 어른이 되어 출감한 누들스는 뚱보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맥스(제임스 우즈 扮)와 팻시, 짝눈을 다시 만나 의기투합한다. 그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맥스가 거물 프랭키와 결탁하여 많은 돈을 벌었지만, 누들스가 출감한 이후에는 두 사람의 의견이 자주 충돌한다. 누들스는 데보라를 만나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스타를 꿈꾸어온 데보라는 할리우드로 떠나고 만다.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밀주(密酒) 사업으로 재미를 보던 이들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맥스는 평생 꿈꾸어왔다며 연방은행을 털자고 하는데, 누들스는 무모한 자살행위라며 반대한다. 맥스가 계획대로 강행하려하자, 누들스는 고민 끝에 동료들이 화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에 밀고한다.
은행을 기습한 이들은 출동한 경찰과 교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팻시와 짝눈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맥스는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다. 누들스는 친구들을 배신하여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중국 극장의 아편굴에 누워서 아편 연기를 마시며 실성한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누들스는 자신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다른 갱단의 조직원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뚱보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아 역 사물함에서 공금 가방을 열어보는데, 거기엔 돈이 한 푼도 들어있지 않았다. 누가 그 돈을 가져간 것인가?
노년기. 누들스는 ‘베일리 재단’의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는다. 베일리 장관의 부인이 데보라인 것을 알게 된 누들스는 30여년 만에 대스타가 된 데보라를 찾아간다. 데보라는 당황하면서 그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 우리의 추억이 모두 사라진다며 오지 말라고 한다. 누들스는 문밖에서 맥스를 빼닮은 데보라의 아들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된다. 베일리 장관이 바로 맥스라는 사실을.
파티에 온 누들스를 따로 자신의 방으로 안내한 베일리 장관, 아니 맥스는 그때 연방은행을 털자고 한 것은 동료들을 죽게 하여 공금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경찰과 함께 꾸민 함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 공금으로 베일리 재단을 만들어 엄청난 수익을 올렸으나 그동안 행한 의원 매수와 마피아와의 불법거래 등이 탄로나 조사를 받게 되었다며,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말 것이란다.
그러면서, 맥스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회한에 찬 인생을 살아왔을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며 권총을 누들스 앞에 내놓는다. 그러나 누들스는 ‘조사가 아무 탈 없이 잘 끝나길 바란다.’고 말하고 그의 저택을 걸어 나온다. 잠시 후 뒤따라 나온 맥스가 저택 옆에 있던 쓰레기 분쇄 트럭 안으로 몸을 던지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첫 장면부터 상당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도 꽤 많다. 화면이 대과거와 과거,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다보니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또, 열네 살 데보라(제니퍼 코넬리 扮)의 청순하면서도 요염한 매력에 비해 어른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 扮)는 이에 못 미치는 듯해서 좀 실망스러웠다. 내 욕심이 너무 과한 건지….
1984년 칸영화제에는 러닝타임 230분인 풀 버전을 출품하였고, 동시에 미국에서는 140분으로 줄인 편집 본을 개봉했는데 너무 줄여서 그런지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도 무삭제본 DVD가 출시되었다. 중간에 휴식시간을 둘 정도로 길지만 집중해서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부’(1972년)와 비교가 되곤 한다. 둘 다 갱스터무비로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부’보다 이 영화를 한 손가락 위로 꼽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인생을 좀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뭐냐,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영화는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갈등과 난제(難題)를 두 시간 남짓으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그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영화보다 편안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인생의 멘토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