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세이

싸이코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6:54

싸이코(Psycho)

 

최용현(수필가)

 

   대낮에 애인 샘(존 개빈 扮)과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고 사무실에 돌아온 마리온(자넷 리 扮)은 사장이 입금하라고 준 4만 달러를 들고 은행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도망갈 짐을 챙겨서 승용차에 싣고 밤새도록 운전을 한 마리온은 차에서 한숨 자고 가다가 다시 날이 저물자 도로변에 있는 낡고 한적한 모텔에 들어간다.

   모텔 주인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 扮)는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마리온에게 빵과 우유를 갖다 주며 친절을 베풀고, 자신은 모텔 바로 뒤에 있는 저택에서 노모(老母)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날 밤, 마리온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던 도중 칼을 들고 나타난 괴한에게 무참히 난자(亂刺)당해 숨을 거둔다.

   다음날, 살인 현장을 발견한 노먼은 욕실에 남은 핏자국을 말끔히 씻어낸 뒤 마리온의 시신을 비닐에 싸고 소지품을 다시 여행 가방에 담아 그녀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는다. 그리고 근처 늪지의 연못에 차를 밀어 넣어 가라앉힌다.

   마리온의 언니 라일라(베라 마일즈 扮)는 동생이 연락도 되지 않고 행방도 묘연하자 샘을 찾아간다. 두 사람은 사립탐정(마틴 발삼 扮)을 고용하여 실종된 마리온을 찾게 한다. 그 탐정은 마리온의 동선(動線)을 추적하다가 베이츠 모텔에 당도하게 되고, 노먼으로부터 그녀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떠났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 탐정은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노먼의 어머니를 만나려고 하지만 노먼은 한사코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그는 라일라와 샘에게 노먼의 어머니를 만나야 단서가 잡힐 것 같다고 말하고 다시 모텔 뒤에 있는 저택으로 숨어들어간다. 그러다가 칼을 든 괴한에게 기습을 당해 참혹하게 죽고 만다.

   사립탐정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라일라와 샘은 그곳 보안관을 찾아간다. 그에게서 노먼의 어머니가 10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부부로 위장하여 베이츠 모텔을 찾아가 투숙한다. 방을 하나씩 뒤지던 두 사람은 마리온이 묵었던 방 변기에서 마리온의 필체가 적힌 종잇조각을 발견한다.

   샘이 노먼을 만나 시간을 끄는 사이, 저택으로 올라간 라일라는 지하창고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노먼의 어머니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죽은 지 오래된 백골상태에 옷을 입혀놓은 박제였다. 이때 노먼이 칼을 들고 달려들지만 때마침 달려온 샘에 의해 라일라는 위기를 모면하고, 노먼은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다.

   노먼의 정체가 밝혀진다. 마마보이였던 노먼은 어머니에게 정부(情夫)가 생기자 정부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죄책감 때문에 어머니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박제해서 함께 지내왔다. 그는 자아(自我)와 죽은 어머니로 빙의(憑依)되는 또 다른 자아를 함께 지닌 이중인격의 존재, 즉 사이코(psycho)였던 것이다.

   노먼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어머니로 빙의된 또 다른 자아가 그 여자를 죽이게 하는데, 전에 이 지역에서 실종된 두 소녀도 노먼이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노먼을 정신병원에 격리수용하고, 마리온의 시체가 들어있는 자동차를 연못에서 건져 올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싸이코’(올바른 표기는 사이코)는 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에서 일어났던 사이코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의 엽기적인 행각을 모태로 쓴 로버트 블록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1960년에 흑백영화로 만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이다. 이 영화는 히치콕의 독창적인 영상기술이 곳곳에 숨어있어 연출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수교재일 뿐 아니라 스릴러 장르의 교본이 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차안에서 하룻밤을 지낸 마리온을 검문했던 경찰관이 계속 뒤따라오자, 마리온은 급히 승용차를 팔고 새 차를 사면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공금 4만 달러를 들고 달아나는 여주인공의 쫓기는 심리상태를 표현한 장면으로 보인다.

   영화가 절반 정도 지날 무렵, 여주인공 마리온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남기면서 갑자기 살해되어 관객은 의표를 찔린다. 마리온은 샤워 도중 괴한에 의해 무참히 난자당해 욕조 바닥에 쓰러진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에 이어, 다시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과 마리온의 피가 섞인 물이 욕조의 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증폭되어 나오고, 욕조의 구멍을 클로즈업하던 화면은 눈을 뜨고 죽은 마리온의 얼굴로 다시 옮겨간다. 현장상황은 현악기의 음울하면서도 강렬한 비트가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 샤워 신을 찍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마지막에, 관객들을 향해 웃는 노먼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다. 또, 노먼이 정신병원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대사를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들은 알게 될 거야. 나는 파리 한 마리도 해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요즘 세상엔 별별 사이코들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정신질환 용어인 사이코란 말이 보편화된 것은 이 영화 때문이다. 확실히 천재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싸이코’의 인기에 편승한 속편이 줄줄이 나왔다. 안소니 퍼킨스가 모두 주연을 맡았고 ‘싸이코 3’에서는 감독까지 맡았다. 2편과 3편을 보았는데 갈수록 스토리가 허술하고 긴장감도 떨어졌다. 1998년에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싸이코’를 컬러로 리메이크했으나 원작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서인지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