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장난
금지된 장난(Jeux Interdits)
최용현(수필가)
1940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농촌으로 가는 피난길에서 다섯 살 소녀 폴레트(브리지트 포세 扮)는 독일군 폭격기의 공습으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안고 있던 강아지마저 죽는다.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강아지를 강에 던져버리자, 폴레트는 부모를 버려두고 강가로 내려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강아지를 따라간다.
한편, 파리 근교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농촌에서 도망가는 송아지를 잡으러 쫓아가던 열한 살 소년 미셀(조르주 푸졸리 扮)은 강가에서 죽은 강아지를 안고 있는 폴레트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다음 날, 죽은 것은 모두 구덩이에다 묻어줘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폴레트는 버려둔 강아지를 안고 강가에 있는 물방앗간으로 향한다. 미셀이 뒤따라오고…. 두 아이는 방앗간 공터에 강아지를 묻어줄 구덩이를 파는데, 이때 미셀이 말한다.
“좋은 생각이 났어. 아주 굉장한 묘지를 만드는 거야.”
“묘지가 뭔데?”
“죽은 것들을 묻어주는 곳이야. 여러 무덤이 같이 붙어있어.”
“왜 같이 있는데?”
“혼자 있으면 외롭거든.”
“그럼 내 강아지는 혼자 있어서 외롭겠네?”
“그렇지, 다른 동물들을 찾아서 같이 묻어줄까? 그럼 외롭지 않을 거야. 그치?”
미셀은 강아지를 묻은 후 무덤에 십자가를 세워주고, 폴레트는 그 십자가에 자신의 목걸이를 걸어준다. 두 아이는 죽은 강아지가 외롭지 않게 그 옆에 쥐나 새, 벌레 등 죽은 동물들을 묻어주고 십자가를 세워주기로 한다.
동물 무덤이 점점 늘어나자 십자가도 그만큼 필요해진다. 미셀은 나무로 열심히 십자가를 만들지만, 파리 아가씨는 눈이 상당히 높다. 칠이 잘 된 예쁜 십자가만 좋아한다. 성당에서의 가족미사 때도 두 아이는 벽에 걸린 나무십자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셀은 멋진 십자가만 보이면 무조건 훔쳐온다. 마차에 치여서 앓다가 죽은 형의 장의차에 붙어있는 십자가를 훔쳐오더니 가족묘지에 있는 십자가도 죄다 뽑아온다. 그러다가 폴레트가 좋아하는, 성당 제단 위에 있는 십자가를 훔치려다 신부에게 발각되고 만다.
가족묘지의 십자가들이 모두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미셀의 아버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옆집 구와르 네를 의심, 그 집 가족묘지의 십자가를 뽑아서 부러뜨린다. 미셀의 형을 조문하러 오다가 이 모습을 본 구와르 씨와 미셀의 아버지는 격투를 벌인다.
결국 신부가 일러줘서 미셀이 범인임이 밝혀지고, 집에서 쫓겨난 미셀은 결국 아버지에게 붙잡혀 얼반(?)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훔친 십자가를 어떻게 했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폴레트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이때 폴레트를 고아수용소로 데려가기 위해 조사반원이 집으로 찾아온다. 미셀의 아버지는 십자가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려주면 폴레트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미셀이 모두 실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레트는 그들에게 넘겨지고 만다.
화가 난 미셀은 방앗간으로 달려가 동물묘지에 세워준 십자가들을 모두 뽑아 강물에 던져버리면서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폴레트가 강아지 묘의 십자가에 걸어준 목걸이는 차마 던져버리지 못하고 방앗간 지킴이인 부엉이 앞에 걸어주면서 ‘가져! 네가 백 년 동안 가져!’ 하고 말한다. 아, 미셀….
한편, 조사반원을 따라간 폴레트는 이름표를 달고 전쟁고아들이 모여 있는 대합실 구석에 멍하니 서있다. 그때 어디선가 미셀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미셀! 미셀!’ 하며 군중 속으로 뛰어나가는 폴레트. 첫 장면에서처럼 주제곡 ‘로망스(Romance de Amor)’의 기타 선율이 애절하게 울려 퍼지면서 FIN 자막이 나온다.
영화 ‘금지된 장난(Jeux Interdits)’은 프랑스의 극작가 프랑소와 보와이에의 시나리오 ‘나무 십자가’를 르네 클레망 감독이 이름을 바꿔서 1952년에 만든 흑백필름이다. 요즘 신세대들은 이 영화를 잘 모르지만 나르시소 예페가 기타로 연주하는 ‘로망스’는 잘 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특별상과 뉴욕영화비평가협회 외국영화상을 수상했고,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전쟁의 비극을 뛰어넘는 어린이의 순수함을 훌륭하게 표현했다.’며 금사자상을 받았다. 자국(自國)에서 주최한 칸영화제에서는 십자가를 가지고 노는 행위 때문에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대상을 받았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좀 특이하다. 로망스의 선율이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다가 화면에 피난민의 행렬을 비추면서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바로 폭격기에서 쏘는 기관총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전쟁의 참화를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하려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란다.
영화는 순진무구한 두 아이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두 아이가, 죽은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의 무덤 앞에 세워줄 십자가를 훔치는 장면은 전쟁의 참혹한 모습보다 더 아프게 전쟁을 고발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반전영화의 진수(眞髓)라 할만하다.
앙숙인 두 이웃의 자녀들인 미셀의 누나와 구와르 씨의 제대한 아들이 전원에서 펼치는 로맨스는 영화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헛간의 밀짚 덤불에서 밀회를 하다가 미셀에게 들키는 장면은 아주 목가적이다. 작가의 따스한 심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다섯 살짜리 폴레트한테 꽉 잡힌 미셀이 부모형제도 안중에 없이 하루 종일 폴레트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시절 프랑스에서도 ‘아들 키워봤자 말짱 황이다.’는 속담이 있었겠구나 생각하며 혼자 씩- 웃었다.
눈물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미셀! 미셀!’을 애타게 부르며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폴레트. 그 라스트 신의 강렬한 여운으로 필자를 한동안 울먹이게 한 꼬마소녀, 찾아보니 1946년생이다.
이 꼬마가 성장한 모습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추적해보았다. 톡 튀어나온 이마, 초롱초롱한 눈, 자그마한 입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꼬마가 중년부인이 된 모습은 헤드폰 씌워주는 장면으로 유명한 프랑스 영화 ‘라붐’(1980년)에서 어린 소피 마르소의 어머니로 나오는 바로 그 여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