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양지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최용현(수필가)
내가 대학에 입학하여 서울에서 프레시맨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경남 밀양의 시골 고향집에는 한 아가씨가 하숙을 하고 있었다. 마산교대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시골 고향집과 가까운 초등학교로 발령이 난, 진해가 고향인 여선생님이었다.
지난 봄, 여선생님이 그 초등학교 바로 뒤에 있는 외딴집인 고향집에 찾아와 막무가내로 하숙을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아들들이 모두 객지로 나가있어서 적적했던 부모님께서 허락을 했단다. 하숙이라기보다는 방 하나를 내주고 함께 사는 거였다.
내가 가끔 주말에 고향집에 내려오면 그 선생님이 아주 좋아했다. 말동무가 없어서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아 나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우린 금방 친해졌다. 주말이 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집에 내려왔고, 그 선생님이 당직을 하는 일요일은 함께 학교로 갔다. 그 선생님은 반 아이들 채점을 하거나 밀린 업무처리를 했고, 나는 옆에서 풍금을 쳤다. 아니, 풍금을 배웠다.
그 선생님은 우리 집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붓글씨 족자를 보고,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학교 대표로 여러 번 서예대회에 출전했다는 얘기를 듣고, 붓글씨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약속을 했다. 이번 여름방학 때 풍금과 붓글씨를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기로.
여름방학이 되었다. 낮에는 학교에 가서 함께 풍금을 쳤고, 밤에는 내 방에서 함께 붓글씨를 썼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둘의 실력도 제법 늘어 그 선생님은 담임을 맡은 4학년의 서예를 직접 지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한 손으로 치던 풍금을, 악보를 보면서 두 손으로 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내 레퍼토리는 고등학교 음악책에 있는 가곡들이었다. ‘동심초’ ‘수선화’ ‘가을국화’….
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 그 선생님이 학교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더니 좋은 영화가 읍내에 왔다며 영화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마다 할 리 없었고, 우린 바로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갔다.
그때 함께 본 영화가 바로 저 유명한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이다. 내 할리우드 키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 무수한 흑백영화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불후의 명화이다.
이 영화는 신문기자 출신 작가인 T. 드라이저의 장편소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을 1951년에 영화화한 것으로, 그해 감독상과 각본상, 촬영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미국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남자주인공은 우수(憂愁)를 눈동자에 가득히 담고 있는 당대 최고의 성격파 배우 몽고메리 크리프트이고, 여자주인공은 이웃집 누이처럼 착하고 순진한 여공 역을 맡은 셜리 윈터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눈부신 미모로 남자주인공을 패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팜므 파탈의 원조 엘리자베스 테일러이다.
가난한 전도사의 아들인 주인공(몽고메리 크리프트 扮)은 호텔 종업원으로 들어가 술과 환락에 빠져들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동경하는 청년으로 변한다. 다시 셔츠공장을 경영하는 삼촌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약삭빠르게 처신하며 출세가도에 오른다. 이미 도시의 쾌락과 야망에 눈을 뜬 청년은 거기서 한 여공(셜리 윈터스 扮)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 무렵, 청년은 눈부신 미모를 지닌 대부호의 딸(엘리자베스 테일러 扮)과 우연히 알게 되고, 신분상승이 보장된 그녀와의 멋진 결혼을 꿈꾸게 된다. 결국, 걸림돌인 여공을 호수로 유인하여 보트에 태운 다음, 보트를 전복시켜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보트 위에서 마냥 행복해 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결행을 하지 못하는데, 그 여자가 일어서는 바람에 보트가 기우뚱하며 전복된다. 청년은 헤엄을 쳐서 밖으로 나오지만 그 여자는 익사하고 만다. 보트가 뒤집힌 것은 분명히 우연이었으나 수영선수 출신인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그 여자를 구할 수도 있었다. 이 남자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최후진술에서 판사가 묻는다.
“당신이 그 여자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구하지 않았소?”
그의 대답 한 마디에 그의 목숨이 달려있을 지도 모르건만, 청년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한다.
“네. 그 순간 딴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일급 살인죄가 적용되어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달콤했던 키스를 회상하며 형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야망과 사랑은 함께 달성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하나를 달성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된다. 사랑을 위해 야망을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야망을 위해 사랑을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래 전에 심은하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연속극 ‘청춘의 덫’은 후자의 전형적인 예이리라.
고전 명화 한 편만 다시 보여준다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스무 살 대학생의 눈으로 보아도 넋을 잃을 만큼 어여뻤던 열아홉 살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의 눈부신 미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으리라.
예전에 ‘젊은이의 양지’라는 제목의 TV연속극이 나왔을 때, 좀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웬 드라마가 가당찮게도 이 불후의 명화 제목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고백컨대, 이 영화 제목에는 그 여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나는 대학 1학년을 마친 그해 겨울에 군 입대를 했고, 그 여선생님은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3년 사이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우리 집을 떠났다.
얼마 전, 40여년 만에 그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관련 사이트에서 찾지 못해 경남 교육청에 전화를 해서 추적한 결과, 선생님을 그만 두고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찾기를 포기했다.
그래, 맞아! 추억은 그냥 가슴 속에 담아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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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필자의 고향집인 그 외딴집은 허물어져 논이 되었으며, 그 초등학교(월산국민학교)는 폐교가 되어 ‘밀양연극촌’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