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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6:1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최용현(수필가)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무수한 명작을 남긴 금세기 최고의 문호이다. 그의 역작 노인과 바다는 퓰리처상(1952)과 노벨문학상(1954)을 거푸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란, 중일전쟁 등에 직접 참전하거나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평생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 쿠바 등지를 여행하며 사냥과 낚시, 투우 등을 즐기면서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았다. 이러한 체험들은 모두 그의 작품들 속에 용해되었고, 그는 강렬하고 야성적인 남아로 확고한 이미지와 명성을 남겼다.

   투우를 다룬 그의 논픽션 오후의 죽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해피엔드를 맛볼 수 없다. 죽음이란 반드시 찾아와 남은 자는 사랑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관의 일단(一端)인 바, 그의 소설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주옥같은 명작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아마도 노인과 바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아닌가 싶다. ‘노인과 바다는 왕년의 명우 스펜서 트레이시(1958)와 안소니 퀸(1990)이 각각 노인 역을 맡아 열연을 했는데, 두 영화 모두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1936년에 발발한 스페인 내란에 그가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포화 속으로 뛰어든 주인공의 영웅적인 무용담과 함께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의 내면 묘사가 뛰어나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영화화된 헤밍웨이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파라마운트사 창립 40주년(1943) 기념으로 제작되었으며, 원작 소설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집필할 때부터 영화화를 생각했고, 남자 주인공은 그의 친구인 게리 쿠퍼를, 여자 주인공은 잉그리드 버그만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섬은 아니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이다.

        파도가 밀려와 한 줌의 흙을 씻어 가면 씻긴 만큼 대륙은 줄어든다.

        그것은 갑()이 줄어듦과 같고, 그대 친구의 아니, 그대 자신의 땅이 줄어듦과 같다.

 

   원작소설의 서문에 인용되어 있는, 영국의 시인 존 던의 시(기도문) 중 앞부분이다. 이 소설의 주제를 암시해 주고 있다.

   1937,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공화파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학교수인 로버트 조단(게리 쿠퍼 )은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공화파에 참여하여 협곡 사이의 철교 폭파임무를 맡는다. 그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산 속에서 활약하고 있던 게릴라들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조단은 프랑코 정권에 의해 부모가 처형되고 자신은 능욕 당한, 그러나 지극히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 )를 만난다.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마리아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한 모습이 조단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산 속에 단둘이 남았을 때 마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 ‘난 키스를 할 줄 몰라요. 키스를 할 때 코는 어디로 가죠? 그게 늘 궁금했어요.’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장면이다.

   우여곡절 끝에 철교를 폭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조단이 탄 말이 적의 포탄에 맞아 쓰러지고 그는 다리에 중상을 입고 만다. 그는 탈출을 포기하고 마리아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조단이 자신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리아를 설득해서 보내는 장면, 이 영화의 압권이다.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 당신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내가 있어. , 가는 거지? 우린 작별인사를 할 필요가 없어. 우린 헤어지는 게 아니니까.”

   울면서, 절규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마리아는 떠나간다. 끝내 운명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하느님, 마리아를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조단은 가물가물해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기관총을 끌어당겨 잡는다. 저 아래에서 추격병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장면에서도 종이 울린다.

   사흘 밤과 사흘 낮의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 산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절박한 상황과 죽음에의 공포 속에서 전개되는 운명적인 사랑- 이 빈틈없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영화 전편에 박진감과 긴장감을 더해준다.

   조단과 마리아가 마지막에 헤어지는 장면은 원작자 헤밍웨이와 연출자인 샘 우드가 열 번인가를 반복해서 연기를 하게 했는데도, 그때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진짜 눈물을 흘리며 열연했다는 가십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아카데미상은 게릴라 대장의 부인인 여장부 필라(카티나 파시누 )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9615월에 게리 쿠퍼가 암으로 죽자, 공교롭게도 두 달 뒤인 7월에 헤밍웨이도 엽총 자살로 세상을 떴다. 헤밍웨이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의 소설 서문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에 이어지는 뒷부분은 다음과 같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감수(減壽)이니, 그것은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묻지 마라. 그것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Any man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