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세이

카사블랑카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6:10

카사블랑카(Casablanca)

 

최용현(수필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 모로코에 있는 항구도시 카사블랑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란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는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눈치를 보며 비자를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카페 아메리카의 사장 릭(험프리 보가트 )은 인상은 좀 차가워 보이지만, 에티오피아와 스페인의 내전에 참전한 적도 있는 독특한 이력의 미국인이다.

   중요한 서류를 가진 독일 관리 두 명이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이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르 놀 경찰서장은 새로 부임한 나치 독일의 스트라제 소령을 대동하고 카페에 나타난다. 르 놀 서장은 약간 부패한 관리이지만 릭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나치 독일을 싫어하는 것도 서로 통하고.

   이 카페에서 불법으로 비자 장사를 하는 우가티는 서명만 하면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통행증 2장을 릭에게 맡긴다. 나중에 와서 찾아가겠다며. 그러나 우가티는 독일 관리를 살해하고 통행증을 뺏은 혐의로 그날 밤 경찰에 체포된다.

   다음날, 반 나치 레지스탕스의 거물인 빅터 라즐로(폴 헨라이드 )와 그의 아내 일자(잉그리드 버그만 )가 우가티를 만나려고 카페에 들어온다. 일자는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샘을 알아보고, 릭의 근황을 물어보며 시간이 흘러도(As time goes by)’를 불러달라고 한다. 샘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다가온 릭은 일자를 보게 된다.

   그날 밤, 릭은 혼자 술을 마시며 옛 추억을 되새긴다. 이곳에 오기 전 파리에 있을 때, 릭과 일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일자가 요청한 그 곡은 둘이서 자주 가던 카페에서 샘이 즐겨 부르던 곡이었다. 전쟁은 점점 연합군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독일군의 파리 입성이 촌각을 다투게 된다.

   릭과 일자는 샘과 함께 파리를 떠나기로 하고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다음날, 기차역에서 비를 맞으며 일자를 기다리던 릭은 샘이 가져온 일자의 메모를 보고 망연자실한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어요

            이유는 묻지 말고 내 사랑을 믿어줘요

            신의 은총이 있기를

 

   그렇게 헤어진 후, 릭은 이곳 카사블랑카에서 혼자 사업에 열중하며 살아왔고, 어느 정도 성공도 했는데 이곳에 일자가 남편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밤늦게 일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날 파리에서 함께 떠나지 못한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술에 취한 릭은 그때 바람맞은 배신감 때문에 빈정거리며 독설만 퍼부어댄다.

   다음날, 스트라제 소령으로부터 경고와 위협을 받고 있던 빅터는 릭이 통행증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릭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 그러나 릭은 차갑게 거절하면서 그 이유는 당신 부인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날 밤 다시 릭을 찾아온 일자, 파리에서 사랑을 나눌 때 이미 빅터와 결혼을 했었지만, 남편이 수용소에서 죽은 줄 알고 있었다고 고백을 한다. 파리를 떠나기 직전에 남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함께 떠날 수 없었다고 하면서 흐느낀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어요.’ 하며 일자는 릭의 품에 안긴다.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다음 날 공항에 도착한 세 사람, 릭은 일자에게 빅터와 함께 비행기를 타라고 한다. 빅터만 미국으로 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자는 떠나지 않겠다고 하지만, 릭은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은 빅터의 일부이고 그를 지탱하는 힘이야. 빅터 혼자 떠나보내면 당신은 틀림없이 후회할 거야. 당장은 아니겠지만 아마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럼, 우리 관계는요?”

   “파리의 추억으로 남겠지.”

   빅터와 일자가 비행기 트랙을 향해 걸어가고, 이때 스트라제 소령이 나타나 비행기의 이륙을 막으려 하지만, 릭이 쏜 권총에 맞아 쓰러진다. 마침내 비행기는 자욱한 안개를 뚫고 리스본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이 영화의 제목인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하얀 집이란 의미를 지닌 스페인어다. 마이클 커티즈 감독이 1942년에 흑백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감독상을 수상했고, 우리나라에는 1957년에 개봉되었다. 한참 후에 새로 천연색을 입혀 재개봉했다.

   영화에서 샘(둘리 윌슨 )이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재즈곡 ‘As time goes by’는 가사가 영화의 스토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주목을 받았다. 그 후에 나온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라는 노래도 영화의 명성에 힘입어 큰 인기를 얻었다.

   주인공 릭 역에 미국 대통령을 지낸 로날드 레이건을 캐스팅했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갱 영화에서 주로 악역을 하던 조연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행운을 잡았다. 또 스웨덴에서 갓 건너온 신인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 영화로 단숨에 할리우드의 주목 받는 스타가 되었다.

   릭이 일자에게 하던 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는 릭이 휴식시간에 장난스럽게 하던 애드리브를 살린 것이란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채 촬영을 시작한 탓에 아무도 결말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일자와 함께 떠날 수 있는 티켓 두 장을 쥔 릭이, 일자 부부에게 티켓을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절제된 사랑을 멋지게 표현한 수작이지만, 눈에 거슬리는 장면도 있다. 기차역 승강장에서 비에 흠뻑 젖은 릭의 코트가 기차 안에서는 물기 하나 없이 말라있다. , 스튜디오에서 찍어서 그렇겠지만 도시의 거리가 이상하리만치 깔끔하다. 저항운동을 하는 거물이 눈에 잘 띄는 흰색 정장을 입고 있는 것도 그렇고.

   르 놀 서장은 총상을 입고 쓰러진 스트라제 소령을 병원으로 옮기라고 지시하면서도 총을 쏜 범인이 릭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안개 속을 걸어가면서 릭이 서장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와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멋진 엔딩으로 꼽힌다.

   “르 놀, 이것이 우리의 뜨거운 우정의 시작일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