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최용현(수필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벤허’(1959년)와 함께 아날로그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개봉된 지 9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지만 요즘에도 케이블TV에서 심심찮게 방영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미국의 여류소설가 마가렛 미첼이 26세 때 집필을 시작하여 10년 만인 1936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마가렛 미첼은 이 작품 한 편만 남기고 49세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대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인 시드니 하워드 등 13명, 감독은 빅터 플레밍 등 5명이 관여한 합작품이다. 남자주인공은 클라크 게이블로 일찌감치 결정되었고, 여자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을 저울질했지만, ‘폭풍의 언덕’(1939년)을 찍기 위해 로렌스 올리비에를 따라 미국에 건너온 영국 출신의 무명배우 비비안 리가 발탁되었다.
미국 남부의 조지아 주 타라 농장의 세 딸 중에서 장녀 스칼렛(비비안 리 扮)은 빼어난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이 지역 청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스칼렛이 좋아하는 남자는 오직 한 사람, 귀공자풍의 소심한 청년 애슐리(레슬리 하워드 扮)이다. 스칼렛은 파티에서 만난 레트(클라크 게이블 扮)에게 애슐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지만, 애슐리가 멜라니(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扮)와 결혼하게 되자, 홧김에 멜라니의 남동생 찰스와 결혼한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북부와, 전통과 관습에 의존하며 노예와 함께 목화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남부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겨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전황은 점차 남군에게 불리해진다. 결국 찰스는 전사하고, 북군이 애틀랜타까지 쳐들어온다. 스칼렛은 상복(喪服)을 입고서도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전쟁의 불길이 점점 거세지자, 스칼렛을 보살펴주던 레트는 입대하기 위해 전장(戰場)으로 떠나고, 스칼렛은 마차를 몰고 멜라니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향인 타라로 향한다. 고향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실성한 아버지와 혹독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칼렛은 타라 농장을 다시 일으키고 가족들을 먹여 살릴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배를 곯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스칼렛은 여동생의 약혼자인 돈 많은 프랭크를 유혹하여 결혼한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스칼렛은 전장에서 돌아온 애슐리와 함께 프랭크의 자금으로 제재소를 운영하며 제법 큰돈을 번다. 그러다가 비밀정치모임에 나갔던 프랭크는 총에 맞아 죽고, 애슐리는 레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스칼렛은 드디어 레트의 청혼을 받아들여 세 번째 결혼을 하고, 딸 보니가 태어난다. 레트가 보니를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스칼렛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레트와 말다툼을 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구르는 바람에 유산(流産)을 한다. 게다가 보니가 말에서 떨어져 죽자, 레트는 극도의 실의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던 멜라니마저 앓다가 숨지는데, 그때서야 스칼렛은 애슐리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멜라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 영화는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린 스칼렛과 그 주변사람들이 풍요로웠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바람이 의미하는 것은 남북전쟁이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은 타라 농장으로 대변되는, 전쟁이 휩쓸고 간 남부의 전통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스칼렛이 어린 시절에 누렸던 가족애와 꿈, 사랑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애틀랜타가 불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약 12ha나 되는 세트장을 불태웠고, 스칼렛이 광장에서 부상자들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은 800여명의 엑스트라와 800여개의 마네킹을 활용하여 촬영하였다. 또, 5천 벌이 넘는 의상을 준비하여 배우들과 엑스트라 2,400명을 입혔고, 말 1,100마리를 동원하는 등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여 흑백 무성영화가 횡행하던 그 시절에 컬러로 이런 대작영화를 만든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비비안 리), 촬영상, 명예상 등 10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칼렛의 유모로 나오는 뚱보 하티 맥다니엘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969년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개봉하기 전까지 30년 동안 흥행 1위 자리를 지켜왔다. 1998년에는 AFI 선정 100대 영화에서 4위를 차지했고,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 폴에서 2008년과 2014년에 조사한 ‘미국인이 좋아하는 영화’에서 두 번 다 1위를 차지했다.
자, 이제 3시간 42분 동안 달려온 이 영화의 결말을 보자. 스칼렛은 멜라니가 죽은 뒤에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애슐리가 아닌 레트임을 깨닫고 그에게로 달려간다. 그러나 스칼렛의 애슐리의 대한 집착을 계속 지켜봐온 레트는 이제 지쳤다며 스칼렛을 뿌리치고 떠나가 버린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스칼렛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긴다.
Tara! Home. I'll go home, and I'll think of some way to get him back.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타라!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 거야.
아마도, 내일은 완전히 다른 날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