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 이민족인 남만의 왕 ‘맹획’
남방 이민족인 남만(南蠻)의 왕 ‘맹획’
최용현(수필가)
예부터 중국의 황제는 천자로 군림하면서 주위의 이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라 불렀다. 대대로 중국을 괴롭혀온 민족은 주로 북서쪽에 웅거하고 있는 강족과 저족 오환족 선비족 등이었는데,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후한 말에는 공손찬 원소 조조 등의 군벌들이 이들을 잘 막아주었기 때문에 북쪽 오랑캐들의 대규모 준동은 없었다.
남쪽은 사정이 좀 달랐다. 남쪽이라 함은 지형상 주로 촉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데, 지금의 윈난성(雲南省) 지역과 미얀마 북부지방의 남만족이 사는 곳을 일컫는다. 이곳은 전형적인 열대지방으로 중원에서 볼 때 거친 풍토와 미개한 문화를 가진 곳이다.
남만왕(南蠻王) 맹획.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이민족 사람이다. 막강한 촉군을 맞은 저개발국의 지도자 맹획의 분투하는 모습과 함께 두 가지의 고사성어가 생겨난 유래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유비가 죽고 유선이 즉위하자, 촉의 실권은 승상 제갈량에게 돌아갔다. 제갈량은 안심하고 위(魏)를 정벌하기 위해 우선 남쪽 국경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남만이 위의 사주를 받고 촉으로 쳐들어오기도 했고, 또 촉과의 접경지역 세 군을 점령하고 그곳 태수들과 함께 모반을 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남만 정벌에 나섰다. 무력으로 남만을 평정하더라도 후일 다시 침략해 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갈량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마음으로 복속토록 하여 뒤탈이 없도록 해놓을 작정이었다.
촉의 제갈량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남만왕 맹획은 각 부족장들을 불러 모아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서전에서 무참히 패하여 사로잡히고 말았다. 제갈량이 물었다.
“우리가 너희를 박하게 대접한 적이 없는데 너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모반을 했느냐? 이제 내게 사로잡혔으니 항복하겠는가?”
그러나 맹획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너희가 우리 땅을 침범했으니 우리도 싸우는 것이다. 내 어쩌다 실수로 네게 잡혔다만 항복은 할 수 없다.’며 꼿꼿한 기세로 되받았다.
제갈량은 사로잡은 만병들과 함께 맹획을 놓아주었다. 제갈량은 ‘맹획이 마음으로 따라야만 이 땅을 완전히 평정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잡아도 풀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다졌다.
진지로 돌아온 맹획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노수 가에 진을 쳤다. 촉병은 노수를 건너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무수한 인명피해를 냈다. 그런데 적진에 자중지란이 생겨 맹획이 꽁꽁 묶인 채 만병들에 의해 제갈량 앞으로 끌려왔다. 이번에도 맹획은 큰소리를 쳤다.
“부하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나를 풀어주면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
제갈량은 다시 맹획을 놓아주었다. 맹획은 머리를 쓴답시고 아우 맹우를 거짓으로 항복케 하여 안팎에서 기습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를 간파한 제갈량에게 또다시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아우 핑계를 대며 승복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또 맹획을 놓아주었다.
진지로 돌아온 맹획은 금은보화를 잔뜩 풀어 각 부족의 군사들을 다시 모아 쳐들어왔다. 그러나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일 뿐, 또다시 제갈량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는 제갈량의 속임수에 당했다며 항복하지 않았다. 지략을 속임수라고 우긴 것이다.
네 번째로 풀려난 맹획은 인근 부족 맹수부대의 코끼리를 앞세워 공격하기도 하고, 다섯 번째는 정예병을 이끌고 촉군의 진채를 기습해 보기도 했으나 번번이 제갈량에게 사로잡혔다.
여섯 번째로 풀려난 맹획은 이웃 나라의 등갑군(藤甲軍) 3만 명을 끌어들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등갑이란 등나무를 베어다가 기름에 여러 번 절이고 말려서 만든 갑옷으로, 입으면 물에서도 가라앉지 않으며 칼이나 화살로도 뚫지 못할 정도로 우수한 갑옷이다.
그러나 물에 강하면 불에는 약한 법, 제갈량은 등갑군을 산골짜기로 유인하여 화공(火攻)을 퍼부었다. 불에 타 죽은 등갑군의 시체가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웠으니 촉군의 완승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 비록 나라에는 공을 세웠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였으니 필시 내 명(命)이 길지 못하리라.”
제갈량은 일곱 번째로 사로잡은 맹획을 불러내 포승을 풀어주었다. 이때서야 맹획은 스스로 제갈량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승상께서는 저를 일곱 번이나 잡았다가 모두 놓아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승상 앞에 진심으로 항복하겠습니다.”
남방 약소국의 지도자로서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하며 끝까지 저항했던 남만왕 맹획, 다시는 국경을 침범하지 않음은 물론, 철따라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한다. 촉과 남만의 전쟁은 이렇게 촉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난다.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놓아준다는 뜻의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여기서 나왔다. 이 말 속에는 강대국의 무력 앞에 무참히 꺾인 약소국의 비애가 내포되어 있다. 제갈량은 맹획에게 전과 같이 남만을 다스리게 하고 이번 원정에서 점령한 땅을 모두 돌려주었다.
개선 길에 오른 촉군이 노수에 이르자 격심한 풍랑으로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곳 사람에게 물어보니, 검은 소와 흰 양을 잡아 산 사람의 머리와 함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제갈량은 차마 산 사람의 머리를 바칠 수가 없어 밀가루를 반죽하여 사람 머리 모양의 형상을 만들고, 소와 말을 잡아 고기를 그 속에 넣었다. 이를 ‘만두(蠻頭→饅頭)’라 이름 짓고 노수에 던져 넣으며 간절히 기도하니 거짓말처럼 격랑이 가라앉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남만왕 맹획, 변변치 못한 군사로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세한 강대국의 대군과 싸우는 것이 무리임을 그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항복하는 것은 곧 식민지가 될 뿐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일곱 번이나 수모를 당했지만 천하의 제갈량을 상대로 그만큼 싸운 사실만으로도 그의 불굴의 투혼이 참으로 놀랍고 가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