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열전

충효의 우선순위 ‘서서와 그의 어머니’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8:57

충효의 우선순위 서서와 그의 어머니

 

최용현(수필가)

 

   어느 날, 형주의 신야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 앞에 한 선비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유비는 그가 부르는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는데 그 뜻이 자못 의미심장했다.

 

           천지가 뒤집히려 하고 불의 덕이 스러지려 하네

           큰 집이 무너지려 하는데 한 나무로는 버티기 어렵구나

           산골 속에 현자(賢者)가 있어 밝은 주인을 찾고 있네

           그 분은 현자를 구한다면서 어찌 나를 몰라보시는가

 

   오행설에서 불은 한()을 상징하는 것이니, 한의 멸망을 암시하면서 스스로 어진 선비임을 자처하고 섬길 주인을 찾는다는 뜻이 아닌가. 유비는 전에 수경선생 사마휘로부터 이곳 형주에 천하의 기재들이 모여 있으니 잘 찾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비는 그 선비가 왠지 범상한 사람 같지 않아 그를 정중히 모시고 와서 가르침을 청했다. 그리고 곧 그의 비범한 재주를 알아보고 그를 군사(軍師)로 위촉하여 유비군의 인마를 조련케 했다.

   서서(徐庶). 자는 원직(元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이 깊어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 청년시절에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고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름을 단복(單福)으로 바꾸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다 드디어 유비의 눈에 띈 것이다.

   당시 유비 진영에는 관우 장비 조운 등 뛰어난 용장은 있었으나 전략을 수립하고 지모를 펼칠 참모는 없었기 때문에, 서서를 얻은 유비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군사 서서에게 드디어 실력발휘를 할 기회가 왔다. 인접한 번성을 지키고 있던 조조군의 장수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서는 다양한 진법과 작전을 구사하여 조인의 대군을 단숨에 패퇴시키고 번성을 빼앗는 개가를 올렸다.

   서서를 얻은 유비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떨치자,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서를 제거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조조는 서서가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을 알고 홀로 사는 그의 노모를 허도로 데려와서 아들이 이리로 오도록 편지를 써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노모는 편지를 쓰기는커녕 오히려 조조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내 아들이 유비를 섬기고 있다면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조조! 너는 한의 승상이라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한의 역적이다.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어찌 부끄러운 줄 모른단 말이냐!”

   조조는 치를 떨며 노파를 죽이려 했으나 모사 정욱이, ‘자기를 죽여 달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입니다. 노모가 죽게 되면 서서는 결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며 이해득실을 따져 설득했으므로 조조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정욱은 노파를 모셔가서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수시로 찾아가 문안을 드리고, 직접 찾아가지 못할 때는 서찰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옷을 보냈다. 정욱이 워낙 정성을 다하니 노파도 감복하여 어느 날 정욱에게 고맙다는 서찰을 보내왔다. 정욱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욱은 노파의 필적을 흉내 낸 서찰을 만들어 신야에 있는 서서에게 보냈다.

   “나는 지금 조조에게 잡혀있는데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구나. 네가 이리로 와야만 내가 풀려날 것 같으니 속히 이리로 와다오.”

   분명 어머니의 필체였다. 서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밤새도록 울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유비를 찾아가 그 편지를 보였다. 유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앞이 캄캄했으나 모자(母子)의 정을 끊을 수는 없었다. 유비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유비의 정성에 감복한 서서가 말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 법인데, 저는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조에게 가더라도 그를 위해서는 결코 어떤 지혜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서서는 떠나면서 한 사람을 추천했다.

   “양양 교외 융중 땅에 천하에 하나뿐인 대 현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제갈량, 자는 공명이라 합니다. 주군께서 몸소 찾아가서 모셔오도록 하십시오. 그 사람이 도와준다면 천하를 평정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서서는 밤낮없이 말을 달려 허도에 이르렀다. 조조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노모를 찾았다. 깜짝 놀란 노모가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왔느냐?’하고 물었다.

   어머니의 서찰을 받고 달려왔노라고 서서가 대답했다. 그러자 노모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갑자기 호통을 쳤다.

   “어찌 편지 한 통의 진위도 제대로 가릴 줄 모르더란 말이냐? 옳은 주인을 만나고도 밝은 곳을 버리고 어두운 곳으로 오다니. 아직도 충과 효의 우선순위도 깨우치지 못했더란 말이냐! , 자식을 잘못 길러 조상 뵈올 면목이 없구나.”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서는 그때서야 거짓편지에 속은 것을 알고 땅에 엎드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내당에서 사람이 뛰어나오며 황급히 소리쳤다.

   “노모께서 목을 매셨습니다.”

   죽음으로써 자식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준 어머니, 서서는 어머니가 이미 숨진 것을 알고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조조는 그 소식을 듣고 노모를 후히 장사지내주며 온갖 재물을 보냈지만, 서서는 끝내 아무 것도 받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 조조는 서서를 오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후일 조조가 적벽에서 자신의 선단을 모두 쇠사슬로 묶는 악수(惡手)를 두었을 때 서서는 조조군이 몰살당할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유비는 서서를 잃었지만 그 대신 저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제갈량을 얻게 된다. 제갈량은 서서가 노모를 구하기 위해 유비 곁을 떠난 것을 알고는, 그가 갔으니 노모가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거라고 예측하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예측은 적중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면 어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늙은 어머니를 적진에 홀로 두고 모르는 척하고 지내는 것이 자식으로서 과연 옳은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