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열전

독재자를 처단한 중국 4대 미인 ‘초선’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2:06

독재자를 처단한 중국 4대 미인 ‘초선

 

최용현(수필가)

 

   삼국지에는 여자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꽃 같은 한 몸을 바쳐서 맡은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고 사라지는 한 아리따운 처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선(貂蟬). 사도 왕윤이 어릴 때 저자거리에서 데려와 여러 가지 학문과 기예, 가무를 익히게 한 수양딸.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다. 그 미모는 폐월(閉月), 즉 달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부끄러워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릴 정도라고 하니 가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낙양에 입성한 동탁이 맹장 여포까지 손아귀에 넣고 국정을 제멋대로 주무르자, 원소 조조 손견 등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대항하였으나 내분으로 실패하고 만다. 동탁은 도성을 장안으로 옮기고 거대한 미오성을 지어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살면서 큰소리를 쳤다.

   “일이 잘 되면 천하를 차지할 것이고, 일이 잘못 되어도 미오성 안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낼 것이다.”

   동탁이 제위를 넘보며 공공연히 대역(大逆)의 언사를 해도 조정중신들은 그저 넙죽 엎드릴 뿐, 아무도 저지할 사람이 없었다. 원로백관 사도(司徒) 왕윤 또한 동탁을 제거할 방법을 찾지 못해 홀로 고뇌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철통같은 경호에다 맹장 여포까지 그림자처럼 붙어있으니 동탁에겐 바늘구멍만한 틈도 없었던 것이다.

   열여덟 살이 된 초선은, 연일 시름에 젖어있는 왕윤을 지켜보면서 친부모보다 더한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양부(養父)에게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뜰에 나와 있는 왕윤에게 초선이 다가섰다.

   “요즘 아버님께서 나날이 수척해지는 모습을 보면 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요. 무슨 일 때문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돕고 싶어요.”

   초선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겨있던 왕윤에게 번쩍하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미인을 적진에 파견하여 계교를 꾸미는 계책, 바로 미인계를 통한 연환계(連環計)였다. 동탁을 없애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왕윤이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동탁과 여포는 둘 다 금수(禽獸) 같은 놈들이다. 너를 보면 틀림없이 욕심이 동할 것이다. 너를 먼저 여포에게 바친다고 속이고 일부러 동탁에게 보낸다. 두 사람을 이간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도록 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초선의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초선은 고개를 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겠어요!”

   왕윤은 여포를 초대하여 주안상을 차리고 초선을 불러냈다. 초선이 사뿐사뿐 방안으로 들어서자, 모란꽃 향기가 방안에 퍼졌다. 초선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여포에게 계속 술을 권하였고, 여포는 초선의 미색에 온통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 이때 왕윤이 나섰다.

   “장군, 원하신다면 초선을 장군께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게 정말입니까? 이런 미인을, 이 은혜를 어찌.”

   “그럼 길일을 택해서 초선을 장군의 거처로 보내겠습니다.”

   며칠 후, 왕윤은 동탁을 초빙하여 극진히 환대한 다음 또 초선을 불러냈다. 은은한 주악 속에 소맷자락을 펼치며 춤을 추는 초선.

   “선녀란 바로 초선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오. 미오성에도 미인은 많이 있지만 이만한 미인은 없소.”  

   동탁이 군침을 흘리며 초선의 미모를 칭찬했다. 왕윤이 대답했다.

   “초선을 동 태사님께 헌상하겠습니다. 가실 때 데려가십시오.”

   초선은 입 꼬리가 귀에 걸린 동탁과 함께 수레를 타고 미오성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포는 끙끙 앓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동탁의 침소엔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초선은 일부러 얇은 잠옷을 입은 채 침실의 창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창문 너머로 여포의 모습이 보였다.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애욕으로 몸이 달아올랐을 여포를 생각하며 초선은 흐느끼는 척했다

   여포는 가슴이 미어졌다죽이고 싶도록 동탁이 미웠다또 초선은 여포와 몰래 만나기도 했고, 일부러 둘의 밀회를 동탁에게 들키게 하기도 했다. 분노한 동탁에게 초선은 여포가 자꾸만 치근댄다고 둘러댔다. 동탁은 그런 여포를 죽이려고 별렀다.

  드디어 여포의 질투심과 분노가 극에 이르자,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한 왕윤은 여포와 함께 거사를 결행한다. ‘황제께서 제위를 물려주시려 한다.’고 속여서 동탁을 입조하게 하고, 동탁이 입궐할 때 여포가 참살하기로 한 것이다.

   이윽고 동탁의 수레가 궁문에 당도하자, 성난 여포의 창은 여지없이 동탁의 목을 꿰뚫었다. 여포는 곧바로 말을 타고 미오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초선은 이미 자결하여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하얀 천에 정갈하게 쓴 시() 한 수를 남겨놓은 채.

 

       여자의 살결은 연약하지만

       거울 대신 칼을 지니고 있으면

       다시금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이 몸은 자진해서 형극으로 돌아가노니

       어버이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들었으므로

 

       악기 잡고 춤추던 손에 비수를 감추고

       수왕(獸王)에게 다가가 마침내 독배를 주었노라

       최후의 한잔은 나를 넘어뜨리노라

       아아, 죽어가는 내 귀에 들려오누나

       백성들의 환희의 노래 소리가

       하늘에서 이 몸을 부르는 소리가

 

   여포는 이 시를 몇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자신이 속아 넘어간 것을 깨닫고 혼자 가슴을 쥐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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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탁이 죽고 나서 초선이 여포와 함께 사는 판본(모종강본)도 있지만, 초선이 시 한 수를 남기고 자결하는 판본(길천영치본)이 더 마음에 들어 후자를 따랐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