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열전

관우를 잡고 형주를 빼앗은 명장 ‘여몽’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5. 11:04

관우를 잡고 형주를 빼앗은 명장 여몽

 

최용현(수필가)

 

   삼국지에서 가장 격심한 전장(戰場)은 삼국의 접경지역인 형주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는 유비가 차지했고, 삼국지 최고의 무장 관우가 지켜왔다. 이곳을 공략하여 관우를 사로잡고 형주를 탈환한 사람이 바로 오나라의 명장 여몽이다.

   여몽(呂蒙), 자는 자명(子明).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공부는 죽어라고 하지 않고 불량배와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질만 해오던 아이였다. 소년시절에 어머니를 따라 강남으로 와서 마침내 손권의 군문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뛰어난 무공으로 승승장구, 마침내 장군에 오르지만 학문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탓에 지모를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장군에 머무르고 만다.

   오주(吳主) 손권은 무예가 출중한 여몽이 학식이 부족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어느 날 조용히 불러 학문을 익히도록 권했다. 군무가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는 여몽에게 손권은 차근차근 타일렀다.

   “장군이 바쁘다면 나보다 더 바쁘겠는가. 장군더러 학자가 되라는 건 아니네. 학문을 닦아서 문무를 겸비한 지휘관이 되라는 것일세. 우선 손자’ ‘육도’ ‘좌전’ ‘국어를 읽어보게. 그런 연후에 전국책’ ‘사기’ ‘한서를 읽도록 하게.”

   여몽은 드디어 공부를 시작했다. 출발은 많이 늦었지만 학문에 무섭게 몰두하여 손권이 알려준 책들을 독파함은 물론 사서오경에다 역사서, 병법서까지 두루 섭렵했다.

   어느 날, 선배장군 노숙이 일선으로 가는 길에 여몽의 막사에 들렀다. 여몽을 무식한 장군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이 학식에서 밀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박식했다. 그뿐 아니라 관우를 물리칠 비책까지 노숙에게 가르쳐줄 정도로 책략도 뛰어났다. 노숙은 후배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여몽 장군, 장군의 지모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좋은 걸 배웠습니다. 이젠 오하의 아몽이 아니시군요.”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고사성어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옛날 오나라에서 무식하게 날뛰던 시절의 여몽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느새 지략을 갖춘 훌륭한 무장으로 성장한 것에 감탄하면서 쓰는 말이다. 전혀 진보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노숙의 칭찬에 여몽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겨우 부끄러움을 면했을 뿐입니다. 선비는 사흘을 헤어져 있다가 만나면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다시 봐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정도가 되려면 아직도.”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다시 본다는 뜻의 고사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여기서 생겨났다. 여몽은 문무를 겸비한 무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호랑이의 몸에다 독수리의 날개까지 달게 된 것이다.

   여몽은 그의 큰 그릇을 짐작케 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자신을 모함한 강하태수 채유를 더 높은 자리에 천거하여 그를 포용한 적도 있었고, 용감하지만 성격이 난폭하고 거친 감녕이란 장수가 귀순해 왔을 때,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중용토록 손권에게 건의하여 후일 큰 공을 세우게 하기도 했다.

   이즈음, 오나라의 숙원사업은 적벽대전의 승리로 얻은 형주를 촉으로부터 탈환하는 것이었다. 형주를 지키고 있는 장수가 관우라는 데 오의 고민이 있었다. 관우는 위나라의 공격에 대한 철저한 경계는 물론 오의 침공에 대비하여 곳곳에 봉화대를 세워 완벽한 방어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노숙이 죽고, 오나라의 최고 사령관이 된 여몽은 관우가 지키는 형주에 전혀 허점이 없다고 판단하고, 표면적으로는 관우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형주를 빼앗을 장기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이 중병을 앓는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사령관 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장수 육손에게 후임 사령관 직을 맡긴 채.

   관우의 최대 약점은 자만심이다. 그는 오의 육구사령관에 전혀 이름을 듣지도 못한 젊은 장수가 부임해오자, 오나라 쪽에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주력부대를 번성 쪽으로 옮겨 위나라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한 여몽은 정병 3만을 이끌고 쏜살같이 형주에 상륙했다. 그리고는 봉화대를 지키고 있던 형주 군사들을 술과 뇌물로 회유하여 봉화대를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어놓고 순식간에 형주성을 점령했다.

   여몽은 부하들에게 일체의 약탈행위를 금지시키고 관우의 가족들을 보호토록 하여 형주의 민심을 얻는 한편, 관우의 부하 장수들에게는 이간책을 써서 그다지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형주 땅 거의 전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맥성으로 쫓겨 간 관우가 탈출을 시도할 때 사로잡고 참수하는 개가까지 올렸다.

   오주 손권은 전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관우를 상대로 원대한 지략을 펼쳐서 형주를 탈환한 여몽을 이렇게 치하했다.

   “주유는 적벽에서 조조를 깨뜨렸지만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소. 노숙 또한 제왕의 대략을 갖고 있었지만 형주를 취하지는 못했소. 이번에 형주를 얻은 것은 모두 그대의 공이오. 그대는 주유와 노숙보다도 더한 오나라의 보배요.”

   관우가 죽고 얼마 후 여몽도 병으로 죽었다. 그의 나이 마흔두 살이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여몽이 관우의 귀신에 씌어 죽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관우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후세에 지어낸 얘기가 아닌가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책과는 담을 쌓은 채, 먹고 살기에 바쁘다. 잘 나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창창한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오하의 아몽이 떠오른다. 자신의 목표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3일 후는 몰라도 3개월, 아니 3년 후에는 뭔가 달라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 때 배운 그 알량한 지식만으로 평생을 버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러고도 높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