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및 콩트

사냥꾼을 따라가다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21:28

사냥꾼을 따라가다

 

최용현(수필가)

 

   이웃 아파트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나하고 강원도에 갈래? 토요일 오후에 가서 원주에서 1박하고 영월 부근에서 꿩 사냥하다가 일요일 저녁에 서울로 돌아올 거야. 갈 마음이 있으면 미리 알려줘. 토요일 3시까지 우리 아파트 앞으로 오면 돼.”

   나는 잠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사냥이라는 말엔 약간 거부감이 생겼지만 바람도 쐴 겸 따라가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배가 나와서 요즘 운동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주말마다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몇 번 하다가 말았고, 요즘엔 사진 찍는 데 취미를 붙이려고 퇴근 후에 학원에도 다니고 있고 얼마 전에는 카메라도 한 대 장만했던 터였다.

   나는 따라갈게. 사냥엔 관심이 없지만 자네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이나 찍겠네.’ 하고 바로 대답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친구와 함께 공기총으로 참새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날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다. 산 짐승을 죽이는 것은 살생이고, 살생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꼭 어머니의 말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후론 한 번도 새를 잡지 않았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친구의 지프차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영동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이 밀렸다. 원주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친구가 속해 있는 엽우회(獵友會)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들 얼룩덜룩한 사냥복을 입고 있었고 이들이 타고 온 SUV차에는 사냥개와 사냥장비가 실려 있었다.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열 한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미리 예약해놓은 식당에서 삶은 멧돼지의 목살로 소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내일 사냥에 대해 의논했다.

   일행 중에 생김새가 비슷한 노엽사(老獵師)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이 회장님으로 부르는, 형으로 보이는 사람은 올해 90살이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사람의 나이는 70살이었다. 형제인줄 알았으나 부자(父子)란다. 두 사람이 일찍 옆방으로 잠자러 가자 두 노인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들은 경기도 양평 출신의 유명한 멧돼지 엽사인데, 이들 부자를 모르는 멧돼지 사냥꾼은 없단다. 그 동안 잡은 멧돼지가 수십 마리에 이르며, 옛날에 함경도 개마고원에서 사냥하다가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온 얘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단다.

   내가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아흔의 나이라면 필시 파뿌리 같은 흰머리일 텐데 아직도 검은머리였다는 점과 부자 모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보였다는 점이었다. 또 아직도 둘 다 사냥터를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많은 살생을 하고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도 그러했다.

   다음날, 아침을 콩나물해장국으로 간단히 때운 우리 일행은 바로 차를 타고 영월군 주천면 에 있는 사냥예정지로 향했다. 두 노인은 현지에 대기시켜 놓은 몰이꾼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에 일찍 출발했다고 한다.

   출발지점의 산기슭에 도착하자, 조를 짜서 3~4명씩 나뉘어 출발했다. 우리 조 일행은 적당히 옆으로 벌려 서서 억새 숲을 훑으면서 걷기로 했다. 친구가 데리고 온 사냥개 캐리를 풀어 놓자 캐리는 신이 난 듯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친구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앞서 걸어가던 캐리가 어느 풀숲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짤막한 꼬리를 우뚝 세웠다. 총 쏠 준비를 하라는 신호란다. 나도 숨을 죽이며 그 자리에 섰다.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친구가 거총 자세를 취하며 캐리. 들어가!’ 하고 외쳤다. 캐리가 그 풀숲으로 확- 뛰어 들어가자 꿩 한 마리가 후루룩하며 저쪽으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저만큼 날아가던 장끼가 곤두박질치며 땅으로 떨어졌다. 캐리가 쏜살같이 달려가 장끼를 입에 물고 주인 앞으로 왔다. 친구가 장끼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 이거 제법 오래 묵은 놈이군.”

   친구가 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캐리가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었다나는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한동안 넋이 나간 채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개가 영리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이것이 사냥이로구나.’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들어있던 사냥에 대한 거부감, 즉 사냥은 곧 살생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끼를 날아가게 한 후에 사격을 하는 것인 만큼 나름대로 룰이 있는 한판 게임이구나, 사냥이란 사냥꾼과 사냥개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어낸 한 편의 활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잡은 장끼를 들고 웃고 있는 친구와 캐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처음 본 꿩 사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날 친구가 장끼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두 번 더 보았으나 그 순간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장끼가 불쑥 나타났고,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고 나면 이미 날아가 버렸거나 땅에 떨어지고 난 뒤였다.

   오후 3시에 다시 출발지점 산기슭에서 만난 일행들은 모두 한두 마리씩 꿩을 허리춤에 꿰고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단다. 모두들 만족한 듯 사냥 뒷이야기 나누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노엽사 부자가 속한 조에서는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하고 뒤쫓았으나 놓쳐버렸다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귀경길에 올랐다. 나는 차 안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90살 노인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두말할 것도 없이 늘 산야(山野)에서 청정한 공기 마시며 심신을 단련해왔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사냥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야성이 담겨져 있는 멋진 레포츠이고, 사냥을 살생으로 보는 것은 문약(文弱)한 인간의 어설픈 자비심이 아닐까.

   나는 친구에게 다음 사냥 때도 연락하라고 말했다. 몇 번 더 따라 다녀보다가 마음이 내키면 나도 총을 구입해야지. 좋은 공기 마시며 산길을 뛰어다니면, 사냥의 묘미까지는 몰라도 우선 내 똥배가 쏙 들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