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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배상환 컬럼집 '라스베가스의 불빛은...'를 읽고

월산처사, 따오기 2025. 4. 16. 21:05

발문 - 배상환 칼럼집 『라스베가스의 불빛은 아직도 어둡다를 읽고

최용현(수필가)

   그와 45년 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저자 배상환은 나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이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45년 만에 그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를 생각하면 예지(銳智)로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보내 준 『베가스 한미 뉴스』 연재 칼럼 52편을 며칠 동안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었다. 중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급생 420명 중에서 그와 내가 유이(唯二)하게 글을 쓰는 동업자라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떨어져 있던 45년의 궤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비교적 쉬운 어휘와 문체, 생활 가까이에 있는 소재들이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비슷한 일을 해 봐서 그런 걸까. 그가 글을 풀어 가고 해법을 도출하는 패러다임도 낯설지 않았고 친근감이 들었다. 또 칼럼은 계속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아도취나 현학(衒學), 지적 유희로 빠져들기 쉬운데, 그런 점도 보이지 않았다. 음악에서 출발하여 연극, 시, 산문, 칼럼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발현하는 그의 지식 정보의 산책 행로를 함께 향유할 수 있었다.

   그는 음악 학도였다.

   그는 중등학교 음악 교사 출신으로 합창단 지휘자, 음악잡지 편집위원, 음악 평론가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해 온 음악 학도였다. 그리고 『커피 칸타타』 등 음악에 관한 여러 산문집과 편곡집, 작곡집, 비평집도 내는 등 왕성한 저술 활동도 했다. 이렇게 그의 예술 활동의 근간은 음악이다.

   그가 쓰는 다양한 장르의 글 저변에는 음악적인 요소가 깔려 있다. 그의 음악적 소신에 위해(危害)가 가해질 때는 날이 선 칼날을 내보이기도 한다.

 

   저는 저희 신문 2월 14일 자에 <“아빠 힘내세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온 국민이 즐겨 부르는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경제 활동은 남성인 아빠가 담당하고 가사 노동은 여성인 엄마가 담당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남녀 차별이 심각한 유해가요로 분류하는 것에 화가 나서 쓴 글이었습니다.

           -<어린이 동요 대회> 중에서

 

   , 그가 음악 학도였기에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고 넘어가게 되는 동요의 한 부분도 그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는 짓궂은 아이들이 가사를 변용(變用)해 부르는 동요 <곰 세 마리>의 가사 한 구절이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비수(匕首)가 되는 것을 보고, 유머와 위트로 그 엄마들의 아픔(?)을 대신 위로해 주기도 한다.

 

    <곰 세 마리>라는 노래입니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는데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하고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히쭉히쭉 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짓궂은 아이들이 아빠 곰 대신에 엄마 곰이 뚱뚱하다고 노래해 이 땅의 많은 뚱뚱한 엄마들을 속상하게 합니다.

           - <“아빠 힘내세요!”> 중에서

 

   그는 시로 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그가 1988년에 낸 시집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는 3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세워 당시 교육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한 무명 음악 교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시는 결코 난해하지 않다. 쉬우면서도 후련하고 통쾌하다. 그러나 뒤끝이 작렬한다.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파리>를 보자.

 

  교실 칠판 맨 우측

 국민교육헌장이 들어 있는 액자 맨 나중

 ‘새 역사를 창조하자’의 ‘역사’ 위에

 피 터져 죽어 있는 파리가 붙어 있다

 무엇이 역사 위에서 파리를 죽게 했나

 파리는 왜

 역사를 감추기 위해 피 흘리며 몸으로 막았나

     - 배상환 시집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 중에서

 

   그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음악 학도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던 그가 시집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를 내면서 문학적인 영역에 손을 뻗치게 되고, 다시 미국 이민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의 정신적, 지적 영역은 여러 방면으로 스펙트럼을 넓혀 가게 된다.

   그는 라스베가스에서 ‘서울문화원’과 ‘서울합창단’, ‘코리안 힐링콰이어’ 등 여러 문화 단체를 설립하고, 초청 음악회와 문학 특강, 오페라 감상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이민 생활의 애환을 다룬 산문과 교민들을 위한 신문 칼럼을 꾸준히 쓰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가 이민 생활에서 야기되는 국적과 관련된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피력한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저는 지난 12월 초 베트남을 여행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비자 없이 자유롭게 베트남을 여행할 수 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저는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제게 어떤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달려와 나를 보호하고 나의 권리를 지켜 줄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미국 사람입니다.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현실적, 조건적으로는 미국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항상 한국인의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미국 땅에서 늘 한국말을 하고 한국 뉴스에 귀 기울이며 삽니다. 최근에 제가 쓴 책의 제목 『그리운 곳은 멀고 머문 곳은 낯설다』처럼 갈수록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이민 생활입니다.

     -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을 보며> 중에서

 

   그는 교민들이 보는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통해 그가 라스베가스의 이민자로서 살아온 감회와 함께 고국의 정치와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애정 어린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 때로는 두고 온 고국의 산하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때로는 우려스러운 사회상에 대한 그 나름의 시각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쓴 칼럼 <스님과 장로>, <휘어서 좋다>, <좌파, 우파에 관한 한 생각> 등을 찬찬히 읽어 보면 그는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그가 이민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회한과 자성(自省)의 글도 들어 있어 그와 같은 또래 동년배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파더스 데이는 제게 있어 참으로 부끄러운 날입니다. 제 아버지와 제 자식들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 남매 중 넷째입니다. 제 아버지는 다른 자식들의 눈총을 받아 가면서까지 제게 제일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고 그 서운함,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시다 제가 이민 온 2년 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때 <그리움의 눈물이 모이면 암이 되나 보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만 봐도, 손주들이 재롱을 떠는 것만 봐도 아버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효도하지 못한 그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 <파더스 데이, 부끄러운 아버지의 고백> 중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사는 휴머니스트이다.

   이 책의 목차를 쭉 훑어보면 아주 다양한 주제가 펼쳐져 있어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그것은 삶에의 열정과 휴머니즘이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뜨거운 심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휴머니스트이다.

   그가 칼럼에서 다룬 관심 영역은 아주 다양하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근간으로 음악과 연극, 문학과 미학, 건강과 종교 등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전 분야를 다루고 있다. 좁게는 가족에서부터 라스베가스 인근에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국내 정치 상황이나 사회상, 나아가 시공을 초월한 지구촌까지....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장이 뛰는 한, 그는 세상을 따뜻하게 하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칼럼에 연재한 글뿐만 아니라 그가 이 책의 표제로 정한 『라스베가스의 불빛은 아직도 어둡다』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과감히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주저하며 망설이고만 있기엔 우리 삶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 곁의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일은 저승사자들이 관광버스가 아닌 점보 비행기로 우리를 데리러 올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 서두르십시다. 우리 삶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우리 삶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에서

 

   그가 쓴 이 책의 마지막 칼럼의 마지막 문단이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한층 원숙한 시선으로 더욱 굳건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해 본다. 그에게도 남겨진 삶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