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및 콩트

지구 최후의 날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0:45

 지구 최후의 날

 

최용현(수필가)

 

   ‘19921028일 예수 재림과 함께 믿는자(義人)들은 공중으로 휴거되고 지상에는 7년간 대환란이 일어나는데, 1999년에는 재림예수에 의해 의인들만의 천년왕국이 건설된다.’

   한창 물의를 일으켰던 시한부 종말론의 핵심내용이다. 이 종말론에 빠져 직장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몽땅 교회에 헌납한 채 텐트생활을 하며 포교에 나선 사람도 있고, 가정파탄으로 이혼하거나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 신의 계시(?)로 북한이나 아프리카에 가서 순교(殉敎)를 해야 한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론을 유포하여 신도들로부터 수십 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목사의 집에서 D-데이 이후인 19935월 만기의 몇 억짜리 채권증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자신은 1028일 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보도를 통하여 그 목사가 손에 수갑을 찬 채 엷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 사람 스스로가 그렇게 구속되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D-데이 이후 신도들의 항의로부터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서는 감방보다 더 좋은 데가 있을까?

   종말론은 과거에도 수없이 있어왔다. 서기 1000년이 임박한 999년에도 최후의 심판일이 다가왔다느니, 인류가 멸망한다느니 하는 말이 유포되었다가 그해 마지막 날이 무사히 지나가면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금세기에 들어와서도 근년에 몇 번이나 시한을 정한 종말론이 나타났다가 흐지부지 사라져간 것을 우리는 익히 기억하고 있다.

   흔히 종말론의 근거는 성경의 요한계시록, 다니엘서 등을 들지만, 어디에도 시한이 적시(摘示)된 곳은 없다고 한다. 일부 교파에서 애매한 성경구절을 작위적으로 꿰맞추어 날짜를 뽑은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는 구절은 언제 최후의 그날이 오더라도 아무 거리낌이 없도록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종말론의 또 하나의 근거는 16세기에 나왔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다. 그의 예언서를 번역한 지구 최후의 날은 지난 걸프전 때 또다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지구의 종말이 중동전을 발발로 시작되는 것으로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프랑스에 실재했던 사람으로 의사이며 예언가이다. 젊었을 때 프랑스 왕실에 근무하면서 여성용 화장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사용한 귀부인들이 화장품에 섞여있는 수은성분 때문에 얼굴 피부를 망치는 바람에 원성을 산 일도 있는 별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또, 당시 국왕이던 앙리 2세의 죽음을 정확히 예언, 적중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고, 프랑스 어느 고을에 당시로선 최악의 전염병이던 페스트(黑死病)가 창궐하여 많은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던 때, 몇 년 뒤에나 밝혀진 독특한 방법으로 페스트를 퇴치하게 하여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는 만년(晩年)에 집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집필에 들어갔는데, 4년에 걸쳐 4행시로 된 12권의 예언서 모든 세기를 완성하였다.

   이 책에는 당시로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러나 이미 역사적으로 확인 된 사실들이 세기별로 예언되어 있었다. 20세기 편에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출현, 히틀러의 등장과 패망, 일본의 진주만 공격,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케네디의 암살, 오염된 물고기, 신용카드 제도의 실시 등이 들어 있다. 히틀러(Hitler)를 히스터(Hister)로 표현하는 등의 약간의 오류는 있었지만.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여자가 배를 타고 하늘을 날으리라.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가장 큰 왕이 달라스에서 살해되리라.

 

   19637월에 최초의 여류 비행사가 소련에서 탄생했고, 그해 11월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원서엔 Dorse로 되어 있음)에서 암살되지 않았는가?

   과거는 그렇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는 어떠한가? 여기엔 실로 가공할 내용이 들어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후인 19997월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인류를 절멸(絶滅)시킨다는 것이다. 그 부분의 시를 보자.

 

         19997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거대한 빛에 반대되는 것이 모든 것을 절멸시키리라.

         그 전에 큰 하늘은 그 전조(前兆)를 보이리라.

 

   여기서 거대한 빛의 반대되는 것은 윗부분의 공포의 대왕을 구체화 한 것으로, 대규모 핵폭발로 인하여 지구 표면온도가 급강하하여 지구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이는 핵겨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인류절멸 이전에 하늘이 전조를 보인다는 것은 기상이변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세계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온 현상이나 오존층 파괴로 인한 생태계 혼란 등이 그런 전조가 아닐까?

   이 예언서에 지구 최후의 날로 제시되어 있는 19997월이라는 시점은 태양계의 행성들이 거대한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어 지구 인력이 균형을 잃는 시점이라는 추론적 근거를 대고 있지만, 아무래도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 예언에도 반박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예언이란 본시 모든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의도하는 바에 따라 얼마든지 작위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예언은 하나의 경구(警句)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어마어마한 예언이 빗나가더라도 노스트라다무스의 탁월한 예지가 크게 손상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절멸의 섬뜩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물질문명의 역리(逆理)를 통렬히 꼬집은 문명비판서로서의 가치는 여전히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대, 언젠가 지구 최후의 날이 찾아온다 해도 그것이 어떤 예언이나 종말론, 성경의 어느 구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도, 인류를 영원히 생존케 하는 것도 결국은 인류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