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하철
아! 지하철
최용현(수필가)
‘서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눈이 네 개가 필요합니다.’
주한 미군사령부에서는 팀 스피릿 훈련에 참가하는 미군 장병들에게 연례적으로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교통 실상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꼭 한다고 한다. 웬만큼 정신 차리지 않고는 제대로 차를 운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리라. 수긍이 가는 얘기이기도 하다. 금년 훈련에 참가한 미군들에게도 이런 교육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혼자서 살기로 작정하고 19살 때 절해고도(絶海孤島)로 떠난 소설 속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30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다가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나온 디포우(D. Defoe)의 소설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로빈슨 크루소가 절해고도로 떠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서 30년간이나 혼자서 살았다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되돌아오고야 말았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남녀 두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므로, 인간은 출생 그 자체에서부터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공동체 속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규범(規範)을 필요로 한다. 규범은 공동생활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도덕이나 관습처럼 소극적인 형태로도 존재하고 법규처럼 적극적인 형태로도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규범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데서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한 해 동안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갓 문명의 이기(利器)인 차 때문에 이런 어마어마한 인재(人災)를 당해도 잠잠한 우리들을 보면 교통사고 대국다운 도량인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경찰에 의해 고문당하다 죽은 한 젊은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한 젊은이가 온 국민을 통분케 하고 나라 전체가 법석이던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각 도로, 특히 서울의 거리가 온통 차량으로 뒤덮이고 곳곳에서 교통사고로 아우성치는 일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임은 분명하다. 도로를 아무리 늘려도 차는 그보다 몇 배는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교통사고도 더 늘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니, 그게 정말 걱정이다.
교통법규란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의 하나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한 법률지식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차선을 지키시오.’
‘제한 속도를 지키시오.’
‘차도를 횡단하지 마시오.’
‘빨간 불이 켜지면 지나가지 마시오.’
최소한 이런 상식화된 규범이라도 지켜지면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일 택시를 타고 다닐 처지도 아닌 내가, 집에서 40리가 넘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포함해서 1년에 버스를 타는 경우가 다섯 손가락 안쪽으로밖에는 없다고 하면, 누구나 지하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만큼 일편단심 지하철을 경애(敬愛)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출퇴근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다 다른 곳에 볼일이 생겨도 오직 지하철의 구도로만 계산을 하고, 버스 몇 정거장쯤은 튼튼한 다리를 믿고 걷는 것, 그리고 이도 저도 곤란할 때만 예외적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나의 확고부동한 교통정책(?)이다.
이렇게 지하철과 숙명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하철이 처음 개통되던 1974년도에 서울에 와서 뿌리를 내리게 된 것과 우연히도 일치한다. 직장도 용케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얻었고, 지금까지 몇 번 이사를 했지만 줄 곳 지하철역 주변으로만 다닌 것은 지하철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하철 2, 3, 4호선이 개통되면서 누구보다 쾌재를 불렀고, 계속해서 5, 6, 7, 8호선이 개통되어 내 자가용(?) 시스템은 점차 체계가 잡혀져 갔다.
지금도 촌놈들만 탄다는 콩나물시루 속 같은 1호선에 아침저녁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몸을 싣고 있다. 새로 맞춘 양복 어깨 부분이나 결혼할 때 얻어 입은 겨울코트 등 부분에 묻은 루즈 자국 때문에 아내와 싸울 일이 생겨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참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도 체험으로 알고 있다.
집 앞이나 직장 앞에 몇 번 버스가 지나가는지, 좌석버스와 시내버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건지(실제로 일반버스 타고 좌석요금을 낸 일이 있었다), 요금은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고 지내면서도 별로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지하철 덕분임을 어찌 모르랴.
이런 지하철에 대한 내 지조(志操)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서울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곤욕을 치른 것이 지난번 일주일간의 지하철 파업 때였다. 넉넉잡고 한 시간이면 집에서 직장까지 너끈하던 출근길이, 버스로 2시간 40분이 걸리는 건 그 동안 버스를 멀리한 데 대한 죄 값이라 치더라도, 만원버스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내 체질이 문제였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아무 데고 중간에서 내려야 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출근길에 트럭이 옆구리를 들이받아 앞 유리가 박살난 버스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을 보게 되었을 땐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파업이 막바지에 이르던 6일 째인가, 심정적으로 파업 근로자 편을 들던 내 마음도 바뀌어 근로자들이 차츰 미워져 갔고, 본의 아니게 버스를 타게 된 승객들의 ‘에이, 더러워서 자가용 한 대 사야겠다.’던 불평소리가 왜 그렇게 공감이 가던지….
그러나, 내 어찌 지하철 너를 배신할 수 있으랴. 지하철아, 미어터져도 좋다. 제발 쌩쌩 달려만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