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19:29

 S형에게

 

최용현(수필가)

 

   동경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일본의 경제가 급격히 부상하던 때의 일이다. 일본제 피아노의 수출이 급신장 하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러 갑자기 신장세가 둔화되고 재고가 쌓여갔다. 할 수 없이 생산라인도 줄이고 국내 판매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잘 팔리지 않았다. 피아노가 좀 비싼가.

   판매 전략을 의논하던 어느 백화점에서 한 카피라이터(copywriter)의 아이디어로 이런 문안(文案)을 쓴 대형 현수막을 백화점 건물에 세로로 걸어 놓았다.

   ‘피아노를 가진 아가씨는 좋은 신랑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날부터 눈에 띄게 피아노 매상이 늘어났고, 순식간에 재고 처분은 물론 다시 생산라인을 늘려야 했다.

   카피라이터 입문서에 나오는 얘기이다. 우선 피아노의 판매 공략대상을 미혼여성에다 맞춘 것이 적중했다. 미혼여성 필생의 목표는 좋은 신랑을 만나는 것 아닌가. 이에 착안한 정곡을 찌르는 문안이다. 피아노를 가진 아가씨가 왜 좋은 신랑을 만나는지에 데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건 카피라이터의 몫이 아니다.

    S!

   오늘은 형의 직업인 카피라이터의 얘기로 글을 시작하였소. 등허리까지 푹 패인 소매 없는 셔츠에 허연 허벅지가 드러난 반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며, 삼복더위에도 천형(天刑)처럼 넥타이를 매고 아침부터 만원 지하철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니 넋두리부터 나오오. 자유를 찾아 비상(飛翔)하고 싶어지오. 이 여름은 내게 또 지랄병 같은 발작으로 찾아오는가 보오.

    S!

   벌써 오래 전 일이었소. 형과 근무하던 첫 직장에서 겨우 36개월을 버티고 그 4월에 광기가 발동했었소. 형의 뒤를 따라 훌쩍 사표를 던지고 찾은 자유, 그 신기루 같던 자유가 준 해방감은 너무도 짧았고 곧이어 닥쳐온 절망감이란.

   30대에 들어선 가난한 가장(家長)에게 있어 자유란 곧 무능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소.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인 것을 체험으로 느끼게 된 것도 그해 여름이었소. 그 여름, 무위도식하던 중에 방송작가 지망생을 모집한다는 KBS광고를 보고 며칠 끙끙 앓으며 글 한편 써 보냈더랬소. 합격 통지서와 함께 2주간의 교육 통보를 받고 희희낙락 했던 내 심정을 형은 짐작할 것이오.

   그 무더웠던 여름, 아침부터 온통 아줌마, 여대생들이 판을 치는 그 교육장에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남정네들. 그나마 희귀동물 멸종해가듯 하루걸러 몇 사람씩 줄어들어 곧 여인천하가 눈앞으로 닥쳐왔소.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할 남정네가 대낮에 한가하게 문장 강의를 듣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집에 주저앉기까지에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소. 며칠 동안 쟁쟁한 극작가들, 기라성 같은 탤런트들의 강의도 듣고 KBS식당에서 함께 점심 먹었던 추억만 남겨 놓고 말이오.

    S!

   극작가의 꿈이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싱겁게 날아가서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갈 즈음 형의 얼굴이 떠올랐소. 함께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질적으로 죽이 잘 맞았던 형과 내가 아니었소. 나보다 먼저 사표를 쓰고 떠난 형이 OO그룹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라 새겨진 명함을 갖고 찾아 왔을 때 아! 얼마나 근사해 보였던지.

   나는 부리나케 형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소. 그러나 그날 퇴근하는 형을 만났을 때, 피로한 행색이 역력한 형의 모습을 보고 차마 내 얘기는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소. 고정칼럼으로 실렸던 내 글이 사보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직장을 그만 둔 것을 알았다며 내 속을 들여다보듯 형이 먼저 말문을 열었소.

   최 형, 길을 가다가 커다란 바위가 보이면 그 속에 근사한 여체가 떠올라야 하오. 바위의 모양에 따라 갖가지 포즈의 여체가 떠올라야 한단 말이오. 그 여체를 따라 바위를 깎아나가면 조각품이 되는 것이라오. 조각가가 되려면 그런 경지가 되어야 하오. 또 그런 끼도 있어야 하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라오. 그런데 말이오. 피 말리며 머리를 짜내어도 엉뚱한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일이란 말이오. 오렌지주스 광고에 나오는 따봉이라는 말 있잖소. 그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히트를 해서 그 회사에 떼돈을 안겨 주었지만 그 브라질 말 두 글자를 찾아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소.

   또, ‘,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하던 앙큼한 새댁의 투정을 깜찍하게 연출해 낸 몇 초짜리 TV광고가 CF모델 최진실을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지만 그 문안을 만들어 낸 카피라이터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 않소.

   최 형은 글이나 부지런히 쓰시오. 최 형의 문장도 이제 틀이 잡혀가던데. 글을 쓰면 그래도 이름자는 남지 않소. 글을 쓰는 것은 인생을 걸 만한 일이오.

   최 형, 수석(壽石)을 아는 사람은 결코 돌밭을 앞서 가려고 하지 않소. 뒤에 따라가도 얼마든지 수석을 찾을 수 있소. 문제는 초점을 겨누는 눈에 있지, 앞서느냐 뒤서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소. 최 형이 언젠가 내 뒤를 따라 카피라이터의 길을 걷는다 해도 결코 늦지는 않소. 또 얼마든지 나를 앞지를 수도 있소.

    S!

   형을 본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같소. 이 여름 또 그때처럼 광기(狂氣)가 발동하나 보오. 도박, 어차피 인생은 도박 아니겠소.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서 마을 어귀 골목시장에 가보려고 하오. 무슨 풀인지 나물인지 다 팔아도 몇 천 원이 될 것 같지 않은 채소들을 앞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노파의 하릴없는 눈빛과 이마에 패인 차디찬 나이테도 봐 두려고 하오. 이제 곧 마음을 정리할 거라오.

    S!

   열심히 사시오. 내 넋두리를 들어줘서 고맙소. 이상(李箱)날개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을 외쳐보고 싶소.

   ‘날개야 다시 돋아라.

   그래,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