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1,2
적벽대전1,2(Red Cliff)
최용현(수필가)
동양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100년간의 이야기로 2시간 남짓의 영화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조조나 관우, 조운 등 삼국지의 주요 인물을 다루는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으나, 삼국지의 주요 사건이나 전쟁을 다룬 영화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삼국지의 분수령인 적벽대전을 영화화하려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람이 있었다. ‘영웅본색’(1987년)과 ‘첩혈쌍웅’(1989년) 등 홍콩 느와르 영화로 명성을 얻고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페이스오프’(1997년)와 ‘미션 임파서블 2’(2000년) 등을 연출하여 액션 명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중국 출신의 오우삼 감독이다.
적벽대전은 강북을 평정한 조조가 내친 김에 중원을 통일하려고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손권과 유비 연합군과 벌인 삼국지 최대의 격전이다. 아울러 삼국지 최고의 영웅인 조조와 당대 최고의 기재들인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대결과 함께 각 진영 맹장들의 눈부신 무용(武勇)이 펼쳐지는 축소판 삼국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우삼 감독은 이 영화에 드는 제작비 80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동양3국의 출자(出資)를 이끌어냈는데, 한국은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합작형태로 참여했다. 그는 고대 서양의 전쟁영화인 ‘트로이’(2004년)를 능가하는 고대 동양의 전쟁영화를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와 중국에서 각 분야의 올스타 급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철저한 준비 끝에 촬영에 임했다.
2008년, 드디어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액션 블록버스터 ‘적벽대전(Red Cliff)’이 사전제작으로 완성되었다. 러닝 타임이 4시간 33분이나 되자, 두 편으로 나누어 1편(2시간 12분)을 먼저 개봉하고, 6개월 후에 2편(2시간 21분)을 개봉하였다.
‘적벽대전 1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서기 208년, 유비(우용 扮)가 강북을 제패하고 형주까지 차지한 조조(장풍의 扮)의 대군에게 쫓기며 형주 주민들과 함께 퇴각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조운이 적진 속으로 뛰어들어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구해오고, 기세등등한 조조는 강동의 손권(장첸 扮)에게 전쟁과 항복 중에서 택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다.
유비의 책사 제갈량(금성무 扮)은 손권과 연합하기 위해 강동으로 향하는데, 그곳의 문신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갈량은 명장 주유(양조위 扮)를 찾아가 거문고 협연(協演)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마침내 손권은 유비와 함께 10만 연합군으로 조조의 80만 대군과 결전을 벌이기로 한다.
조조는 철기로 무장한 기마군에게 육로로 연합군을 공격하게 한다. 그러나 주유와 제갈량이 이끄는 연합군은 10연발 연노(連弩)로 화살세례를 퍼부으며 기마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팔괘진(八卦陳)을 펼쳐서 우왕좌왕하는 기마군을 괴멸시킨다. 이때 연합군의 장수들인 관우와 장비, 조운, 그리고 주유와 감녕 등이 펼치는 현란한 창술과 검술은 박진감이 넘친다. 서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수상전(水上戰)을 펼치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적벽으로 향하면서 1편이 끝난다.
1편에서는 주유가 사냥터에서 맞닥뜨린 노회(老獪)한 호랑이를 마치 조조인 양 손권에게 활을 쏘게 하여 결전을 유도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또 손권의 당찬 여동생 손상향(조미 扮)이 자신을 넘보는(?) 유비의 혈 자리를 눌러 쓰러뜨리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은 손상향이 조조군에 잠입하여 비둘기를 통해 메시지를 제갈량에게 전달하고 조조군의 배치도를 그려오면서 시작된다. 조조가 풍토병으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배에 실어 연합군 쪽으로 떠내려 보내자, 연합군은 풍토병이 전염될 것을 우려하여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유비군은 동맹을 깨고 철수한다.
이에 조조가 쾌재를 부르며 주유의 옛 친구인 장간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자, 주유는 조조군의 수군책임자인 채모와 장윤이 연합군의 첩자로 조조의 목을 노리고 있다고 거짓 정보를 흘린다. 의심 많은 조조가 채모와 장윤의 목을 베면서 주유의 반간계(反間計)가 성공한다. 제갈량은 20척의 배에 허수아비와 짚동을 가득 싣고 안개가 자욱한 조조의 선단에 접근하여 10만개의 화살을 받아온다.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은 제갈량이 장담한 동남풍이 불 때까지 조조의 공격을 늦추면 화공(火攻)을 퍼부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아는 주유의 부인 소교(린즈링 扮)는 시간을 끌기 위해 배를 타고 조조의 군영으로 향한다. 흠모하던 소교가 찾아오자, 조조는 전군에게 출전 대기를 시킨 채 소교가 끓여주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드디어 동남풍이 불어오자, 황개가 유황과 건초를 실은 배 10척에 불을 붙여 조조의 선단으로 돌진한다. 이어 감녕이 이끄는 수군이 불바다 속에서 허둥대는 조조군을 도륙하고 수장(水葬)시킨다. 이때 동맹을 깬 것으로 위장하여 철수한 유비군의 관우와 장비, 조운 등이 조조군의 후방을 기습하여 적벽대전을 완벽한 승리로 이끌면서 2편도 끝이 난다.
오우삼 감독은 길이 50m, 높이 36m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을 제작하여 100여 척의 모형전함과 함께 2천척에 달하는 배를 장강에 띄웠다. 그리고 이들을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하여 대규모 수상(水上) 화공의 리얼리티를 살려냈다. 수상전에서 지상전으로 이어지는 40여 분간의 전투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조조군의 장수들이 소교를 죽이려고 하자, 주유와 조운이 달려와 소교를 구해내면서 피아(彼我)의 장수들이 조조의 관사 앞에서 일촉즉발의 대치를 하는데, 이것은 영화적 결말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면 같다. 어쨌거나,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지금까지 나온 삼국지 영화중에서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