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길(La Strada)
최용현(수필가)
가슴을 한 바퀴 돌려 묶은 쇠사슬을 허파근육(?)의 힘으로 끊는 묘기를 부리며 유랑생활을 하는 잠파노(안소니 퀸 扮)는 조수(助手) 로사가 죽자, 그녀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1만 리라를 주고 로사의 동생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扮)를 데려온다.
자그맣고 약간 모자라는 처녀 젤소미나는 ‘나도 로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술가가 될 거야.’ 하며 기대에 부풀어있는데, 잠파노는 회초리로 때려가며 젤소미나에게 드럼을 가르친다. 오토바이가 끄는 포장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펼치는 잠파노의 허파근육 쇼가 끝나면 젤소미나는 광대분장을 하고 모자를 돌리며 적선을 받는다.
어느 식당에서 잠파노는 옆자리의 젤소미나는 안중에도 없이 딴 여자에게 술을 사주고 데리고 나가 외박을 한다. 도로가에 앉아서 밤을 꼬박 샌 젤소미나가 왜 그랬느냐, 언니 로사한테도 그랬느냐고 따지자, 잠파노는 닥치라고 말한다. 젤소미나는 나팔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잠파노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젤소미나는 ‘광대 노릇은 괜찮은데, 당신이 맘에 안 들어요.’ 하면서 집에 가겠다고 한다. 잠파노가 아무 반응이 없자,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잠든 사이에 도망친다. 거리행렬을 따라가던 젤소미나는 서커스단의 마또(리차드 베이스하트 扮)가 고공(高空)의 외줄 위에서 식탁을 차리고 스파게티를 먹는 묘기를 구경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다시 잠파노에게 잡혀간다.
잠파노가 서커스단에 합류하고, 젤소미나는 마또에게 나팔을 배운다. 마또는 잠파노가 공연을 하면서 쇠사슬을 끊으려고 가슴에 힘을 줄 때 ‘잠파노, 전화왔어요.’ 하며 장난을 친다. 잠파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칼을 들고 마또를 쫓아가다가 경찰에게 잡혀간다.
다시 마또를 만난 젤소미나는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하며 울먹인다. 마또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고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 이 돌멩이도 말이야.’ 하고 말한다.
‘돌멩이를 어디에 써요?’ 하고 젤소미나가 반문하자, 마또는 ‘그걸 알면 내가 조물주겠지. 그분은 모든 것을 아셔. 이 돌맹이가 어디에 쓰이는 지도. 너도 그래.’ 하고 말한다. 마또는 또 ‘잠파노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데리고 다니는지도 몰라.’ 하고 말하면서 젤소미나의 목에 예쁜 목걸이를 걸어준다.
그 말에 자신감을 얻은 젤소미나는 마또가 자신의 차를 함께 타고 다니자고 해도, 서커스단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해도 따라가지 않는다. 경찰서 유치장 앞에서 기다리던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나오자 ‘나 조금은 좋죠?’ 하고 물어보는데, 잠파노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성당 헛간에서 하룻밤을 자고 길을 가다가 차 타이어를 고치고 있는 마또를 만난다. 잠파노가 마또를 두드려팬다. 차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진 마또가 숨을 쉬지 않자, 잠파노는 마또의 시신을 다리 밑에 숨기고 그의 차를 다리 밑으로 추락시킨다. 이를 본 젤소미나는 실성(失性)하여 공연 중에도 ‘마또가 아파요.’ 하고 헛소리를 한다. 젤소미나가 돌담 아래에서 잠이 들자, 잠파노는 이불을 덮어주고 몰래 달아난다. 나팔만 남겨두고.
5년 후, 늙수그레해진 잠파노는 어느 해변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를 듣고 따라가다가 한 여자를 만난다. 어디서 그 곡을 배웠느냐고 물어보니 4~5년 전에 아버지가 해변에 쓰러져 있던 정신이 약간 이상한 여자를 데려오셨는데, 늘 양지쪽에 앉아서 나팔로 이 곡만 부르더니 어느 날 죽고 말았단다. 그 후부터 이 곡을 흥얼거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밤, 술집에서 혼자 술을 퍼마신 잠파노는 주위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린다. 그리고 바닷가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비틀거리며 울부짖는다. 그러다가 모래밭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져 손에 모래를 움켜쥐고 흐느끼면서 영화가 끝난다.
‘길(La Strada)’은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만든 흑백영화로, 백치여인의 순수한 영혼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니노 로타의 애잔한 OST와 함께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로마에서 라디오 극작가를 하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성우 줄리에타 마시나를 만나 사귀다가 결혼했고, 1945년 로베르트 로셀리니 감독이 ‘무방비 도시’를 연출할 때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 연출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다가 1954년 ‘길’의 연출을 맡으면서 제작사에서 추천하는 버트 랭카스터와 실바나 망가노 조합을 마다하고 안소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를 과감히 기용하여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에 개봉되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온갖 험한 일을 해야 했던 그 당시의 우리나라 청년들의 사정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우직하면서도 야수 같은 잠파노는 가부장적인 한국남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고, 그런 잠파노를 미워하면서도 순정을 바치는 젤소미나는 순종적인 한국여인들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잠파노와 젤소미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욕망을 지닌 원형적(原型的) 캐릭터이다. 잠파노는 자신에게 괄시를 받으면서도 선심(善心)과 미소를 잃지 않는 젤소미나를 통해서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다음 대사에 잘 녹아있다. 젤소미나가 ‘잠파노, 내가 죽으면 슬퍼해 주실 건가요?’ 하고 묻자 잠파노는 ‘바보 같은 소리 집어쳐!’ 하고 핀잔을 주지만, 막상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울부짖으며 절규하듯 오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