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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짐보(用心棒)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1.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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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짐보(用心棒)

 

최용현(수필가)

 

    ‘요짐보(用心棒)’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61년에 연출한 흑백영화로, 그의 작품 중에서 최초로 해외에 수출된 시대극이다. 다국적 서부극 ‘레드 선’(1971년)에 나오는 일본의 국민배우 미후네 토시로가 주연을 맡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개봉되었다. 요짐보는 경호원 혹은 보디가드를 의미하는 일본의 속어이다.

    도쿠가와 막부가 쇠락해가던 무렵, 떠돌이 무사 산주로(미후네 토시로 扮)가 어떤 마을에 들어서자, 개 한 마리가 사람의 손을 물고 지나간다. 마을의 식당 겸 여인숙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 산주로는 주인장 노인으로부터 이 마을에는 ‘세이베이’와 ‘우시토라’라는 두 폭력조직의 살벌한 세력다툼으로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산주로는 두 조직을 다 파멸시키고 마을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산주로는 우시토라 파의 패거리 중에서 흉악범 3명을 마을 공터에서 순식간에 검으로 처치하여 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이베이 파를 찾아가 요짐보가 되기로 하고 선금 25료를 받는다. 일이 끝나면 잔금 25료를 더 받기로 했지만, 세이베이의 가족들이 나중에 잔금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을 죽이려는 모의를 하는 것을 엿듣고, 받은 선금을 던져주고 나와 버린다.

    한 남자가 우시토라 파의 실력자에게 도박으로 미인 아내를 빼앗기는 일이 발생한다. 그녀의 어린 아들이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본 산주로는 선금 30료를 받고 우시토라 파에 들어간다. 산주로는 세이베이 패거리들의 습격으로 여인을 감시하는 경비원 6명이 죽었다고 보고하고, 자신이 경비원 6명을 해치우고 여인을 구출하여 30료를 주면서 남편, 아이와 함께 멀리 도망을 가도록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의 남편이 산주로에게 보낸 감사편지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 우시토라의 악질 동생 우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 扮)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산주로는 끌려가서 심하게 구타를 당한 채 골방에 갇히고 만다. 우시토라 파의 패거리들은 몰려가서 세이베이의 가옥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패거리들과 세이베이의 가족들을 모두 총과 칼로 몰살한다. 이 틈에 탈출한 산주로는 여인숙 주인장의 도움으로 산중턱에 있는 움막으로 피신한다.

    며칠 동안 몸을 추스른 산주로는 여인숙 주인장이 우노스케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검을 차고 마을로 내려온다. 우시토라 파의 패거리들이 공터로 우루루 몰려나온다. 여인숙 노인장은 밧줄에 꽁꽁 묶여서 우시토라 가옥의 정문(旌門)에 대롱대롱 달려있다.

    산주로는 먼저 우노스케의 팔목에 단검을 던져 총을 못 쏘게 한 후 검으로 쓰러뜨린다. 이어서 남은 패거리 9명을 단숨에 처치한다. 이때 한 놈이 살려달라고 애걸하자 ‘집으로 가라.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최고다.’ 하면서 보내준다. 우노스케는 ‘지옥의 문에서 기다리겠다.’며 악담을 퍼붓고 숨을 거둔다.

    드디어 이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다. 산주로는 여인숙 노인장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고, 공터에 즐비한 패거리들의 시체를 뒤로 한 채 다시 방랑길에 오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요짐보’는 60년 전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와 정밀하게 짜인 화면구성, 망원렌즈를 활용한 촬영 등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동원하여 뛰어난 지모(智謀)로 두 폭력조직을 와해시키는 떠돌이 무사의 활약을 그려내어 작품의 완성도와 영화적 재미,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칼날이 사람을 벨 때 나는 소리를 처음으로 영화에 삽입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장면 연출 스타일을 살펴보자. 모든 것이 불확실한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주로 산주로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부상에서 회복된 후 마을 앞 공터에서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산주로가 패거리들과 당당하게 맞서는 앞모습을 망원렌즈로 심도(深度) 있게 보여주면서 상황에 따라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하고 있다.

    주인공 배우의 이름 미후네 토시로의 ‘토시’는 한자로 민첩할 ‘민(敏)’ 자인데, 그는 이름 그대로 검을 상당히 민첩하게 다루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잠시 숨을 멈추고 전광석화처럼 상대를 벤 후에 숨을 몰아쉰다고 한다.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불후의 명작들인 ‘라쇼몽’(1950년)과 ‘7인의 사무라이’(1954년), ‘요짐보’(1961년)의 속편 격인 ‘츠바키 산주로’(1962년)에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였다.

    그런데, ‘요짐보’는 1929년에 나온 미국의 소설가 대실 해밋의 장편소설 ‘피의 수확’과 스토리가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또, 우연히 마을에 들어온 무사가 마을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 뒤 홀연히 떠나가는 이야기 구조는 앨런 래드가 주연을 맡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1953년)과 흡사하다. 이것을 우연으로 봐야할까?

    이렇듯 서부극에서 영향을 받은 ‘요짐보’는 흥미롭게도 서구의 감독들에 의해 다시 인용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년)에서 무단으로 재탕을 했고,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월터 힐 감독의 ‘라스트맨 스탠딩’(1996년)에서 정식으로 리메이크되어 3탕을 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일본 검술영화의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동양3국의 무(武)에 대한 명칭을 보면, 중국은 무술(武術), 한국은 무예(武藝), 일본은 무도(武道)라고 한다. 무협(武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중국검술영화는 뛰거나 날아다니면서(?) 수시로 칼을 부딪치는 등 과장된 동작이 많다. 이를 답습한 한국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일본영화의 검술은 ‘도(道)’라는 표현에 걸맞게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고 아주 간결하다. 칼을 헛되이 맞부딪치지 않으며 기 싸움을 하다가 순식간에 벤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산주로는 마지막에 9명의 패거리들을 9초 만에 베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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